지금 한국 ‘빚투’라는 시한폭탄, 1929년 대공황과 너무 닮았다 - New York - 1

요즘 한국의 주식, 부동산, 그리고 코인 시장까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말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외신에서도 계속 경고하듯이 지금 좀 한국이 핫하네? 수준의 과열이 아닙니다.

경제 역사를 안다면 머릿속에 강렬하게 스치는 한 장면이 있을 겁니다. 바로 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의 풍경입니다.

앤드루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 같은 세계적인 경제 저널리스트들이 최근 들어 목소리를 높여 경고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그들이 지적하는 건 100년 전 월스트리트를 무너뜨린 그 '파멸의 메커니즘'이 21세기 한국 땅에서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의 민주화"라는 달콤한 독배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불렸습니다. 당시 시장을 지배했던 논리는 놀랍게도 지금과 같습니다. 바로 "금융의 민주화"입니다. 이전까지 주식은 소수 자산가의 전유물이었지만, 1920년대 들어 일반 서민들도 소액의 증거금(Margin)만 있으면 주식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 보급되었습니다. 내 돈 10달러만 있으면 90달러를 빌려 100달러어치 주식을 살 수 있었던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기회의 평등'이라 불렀습니다.

지금 한국은 어떻습니까? 이름만 세련되게 바뀌었을 뿐입니다. 신용공여, 미수거래, 레버리지 ETF, 그리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스마트폰 앱 몇 번 클릭하면 내 자산의 몇 배를 베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 마치 똑똑한 투자 전략인 양 포장되고, 대출 없는 투자는 '바보 같은 짓'으로 치부됩니다. 100년 전 구둣방 소년이 주식 정보를 속삭이던 장면은 이제 단톡방과 유튜브 채널의 '급등주 추천'으로 치환되었습니다.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돈 없는 사람도 빚을 내서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만드는 그 사악한 친절함 말입니다.

혁신이라는 이름의 종교: 라디오에서 AI까지

더 소름 끼치는 공통점은 '기술에 대한 맹신'입니다. 1920년대 사람들을 미치게 했던 키워드는 '라디오'였습니다. 라디오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인류의 소통 방식을 바꿀 신의 도구로 추앙받았습니다. 당시 라디오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실적과 상관없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죠.

지금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AI(인인공지능), 2차전지, 초전도체. 물론 이 기술들이 가짜라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기술의 실체가 아니라 '믿음의 강도'입니다. 분석이 사라지고 신념이 들어서는 순간, 시장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종교 집단이 됩니다. "이 기술은 세상을 바꿀 것이니 지금 가격은 싸다"는 논리는 1929년에도, 2000년 닷컴 버블 때도, 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기업의 이익이 빚의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오로지 '꿈'의 크기만이 주가를 결정합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문장

투자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문장이 있습니다.

"This time is different(이번에는 다르다)."

역사상 이 말이 나온 뒤에 비극으로 끝나지 않은 사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1920년대에도 사람들은 "미국 경제는 영원히 우상향하는 새로운 시대(New Era)에 진입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 집단 최면의 전파 속도는 광속에 가깝습니다. 옆집 철수가 비트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네, 앞집 영희가 주식으로 퇴사했네 하는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뇌를 자극합니다. 포모(FOMO,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결국 마지막에 상투를 잡는 것은 언제나 가장 늦게, 가장 큰 빚을 내서 들어온 평범한 개인들입니다.

연쇄 폭발의 도화선: 반대매매의 공포

진짜 공포는 하락장에서 시작됩니다. 빚으로 쌓아 올린 시장은 무너질 때의 속도가 산술급수가 아니라 기하급수입니다.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시스템은 가차 없이 '반대매매'를 실행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식이 시장가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 투매는 다시 가격 하락을 부르고, 그 하락은 또 다른 담보 부족을 일으켜 더 큰 반대매매를 불러옵니다. 이것이 바로 1929년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을 만든 연쇄 폭발의 메커니즘입니다. 현대의 시스템은 서킷브레이커나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시간을 벌어줄 순 있겠지만, 거대한 빚의 청산 과정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 진통제만 놓는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요? 정책 결정자들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거품을 터뜨리자니 경기 침체가 두렵고, 놔두자니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폭탄이 될 게 뻔합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하는 건 언제나 '폭탄 돌리기'입니다. 내 임기 내에만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유동성이라는 마약을 계속 주입하는 것이죠.

지금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제 심정은 서늘함을 넘어 무력감에 가깝습니다. 기회처럼 보이는 저 화려한 불꽃놀이가 사실은 누군가의 인생을 태우고 있는 마지막 불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빚으로 만들어낸 상승은, 결국 빚으로 인해 무너진다."

이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경제역사에 나오는 법칙입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거래 속도가 0.1초 단위로 빨라져도, 인간의 탐욕과 그에 따른 대가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행됩니다.

시장은 지금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패턴의 끝이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역사는 이미 수차례 경고를 보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