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여신상.
뉴욕항 입구에서 횃불 들고 우뚝 서 있는 그 초록색 거인 누님 ㅋㅋ.
자유의 여신상이 원래부터 미국 이민의 상징이었던 건 아니야.
애초에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보내준 조각상이었거든.
일종의 "미국 독립 축하! 우리 우정 영원~" 이런 느낌.
1876년쯤 프랑스에서 갑자기 "미국에 기념비 하나 만들어 보내자" 하고 결정해.
그래서 조각가 바르톨디라는 양반이 디자인을 맡고, 내부 철골 구조는 무려 에펠탑 만든 그 에펠 형님이 짜줬지.
이름도 거창하게 "자유가 세계를 밝히다(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였어.
근데 웃긴 게, 막상 미국에 도착했을 땐 '헉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감흥이 없었대.
거대한 구조물을 분해해서 배에 실어왔거든. 도착하자마자 조립하느라 몇 년은 걸렸지.
설치비도 부족해서 돈 모금하느라 생쇼 했고. 진짜 흥미로운 건 그 다음부터야.
1892년에 뉴욕항 근처 엘리스 아일랜드가 공식 이민 심사소로 문을 열면서부터 자유의 여신상이 자연스럽게 이민자들과 마주하게 된 거지.
수백만 명의 유럽계 이민자들이 배 타고 미국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본 게 누구냐?
바로 그 초록 누님이야. 머리에 왕관 쓰고, 횃불 들고, 무표정하게 서있는 그 모습.
그때부터 슬슬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거야.
미국은 자유의 나라,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순간 새로운 삶의 시작.... 이런 메시지가 언론과 문학, 나중엔 영화까지 퍼지기 시작한 거지.
이민자들한테는 저게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희망의 상징이 된 거야.
그리고 결정타가 뭐냐면, 1903년에 엠마 라자러스라는 시인이 쓴 The New Colossus라는 시가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지면서야.
그 시에 이런 구절 있어. "지치고, 가난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너희를 나에게 보내라."
이건 뭐 그냥 이민자들을 위한 헌사야. 말 그대로 "힘들었지? 이제 여기서 새롭게 시작해봐" 하는 거잖아.
아이러니한 건, 미국은 당시에도 이민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었거든.
차별도 심했고, 노동 착취도 많았지. 근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거야.
결국 이 모든 게 쌓이고 쌓여서 자유의 여신상은 자연스럽게 미국 이민의 상징이 됐어.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도 늘 저 누님은 배경에 등장하고, 미국 드림이니 뭐니 할 때 항상 언급되고.
배타고 관광객들과 같이 가서 보아야 직접 아래서 볼수 있는데, 한참 바라보다 보면 괜히 묘한 감정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저걸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생각 들면 괜히 뭉클해지는거지.
그냥 하나의 조각상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이민자들에게는 새 인생의 출발선이었지.
그렇게 자유의 여신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미국 이민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거라 생각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