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잘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지역에 차이나타운이 생긴건 무려 1850년대 골드러시 시대 금광 붐에 휩쓸려 태평양을 건너온 광둥계 이민자들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구글링 해보니 최초 중국인 이민자 기록은 1848년도라고 합니다. 한국인 미국 최초 이민자 기록은 1902년이라고 하니까 반세기 넘게 먼저 온 셈입니다.

이렇게 정착한 중국인들은 19세기 중반 각종 공사판과 철도건설 노동자 그리고 세탁소와 식당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친목회와 회관을 세우고 사당과 시장을 만들며 깃발을 꽂았고 1906년 대지진으로 무너졌지만 오히려 동양풍 처마와 등롱을 앞세운 관광지 콘셉트로 재건해 차이나타운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랜트 애비뉴를 산책로처럼 꾸미고 스톡턴 스트리트에는 생선과 채소 박스를 산처럼 쌓아놓는 생활형 시장을 만들고 오래된 SRO라 불리는 단칸 하숙방 건물들에는 노인들이 낮은 임대료로 살았고 지하에는 바느질 공장이 돌아갔으며 골목에는 제례상과 약초, 제과와 면요리 가게가 촘촘했지요.

그런데 중국 본토 출신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거리의 언어가 광둥어 중심에서 만다린으로 섞이기 시작했고 간판도 번체와 간체가 공존하게 되었으며 식탁 위 풍경 역시 달라졌습니다, 매콤한 훠궈와 마라탕, 시안식 비빔면과 충칭식 면요리 같은 지역 전문점을 앞세운 가게들이 오픈했습니다.


2020년 팬데믹은 차이나타운 골목을 한때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임시 야외 테이블과 파티션, 주말 보행전용 거리 같은 실험이 오히려 골목 문화를 밖으로 끌어내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고 폐업한 가게 자리에 젊은 점포가 들어와 메뉴와 인테리어를 바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장사가 잘 안되는 세입자는 렌트와 생활비에 쫓기고 상권은 리치먼드와 선셋, 밀브레이와 샌머테이오 같은 교외 차이나타운들과 고객을 나눠 가지면서 전통 한약방과 제례용품점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차이나타운의 뿌리가 흔들렸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조합과 향우회는 여전히 명절이면 어김없이 등불을 달고 사자춤과 북소리를 울리며 세대 간 다리 역할을 하고 어린이 중국어 학교와 시니어 급식소가 골목 살림을 붙잡아줍니다.

경제적으로도 예전의 값싼 노동 집약형에서 소상공인 브랜딩과 스토어 경험 설계, 콘텐츠화로 축을 돌리고 있고 유튜브와 틱톡에서 한 접시 볶음국수를 만드는 손놀림이 수십만 조회 수를 만들며 손님을 데려오지요.

2010년 이후 본토 이민자 유입은 결과적으로 차이나타운을 "관광지와 생활 동네" 두 얼굴의 교차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낮에는 관광객이 기념품과 달달한 코코넛 번을 들고 사진을 찍고 저녁에는 인근 직장인이 매운 향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밤에는 세입자들이 좁은 방 창문을 열어 다려놓은 셔츠를 걸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앞으로도 차이나타운은 오래된 등롱 아래 새 간판이 걸리는 방식으로 변할 겁니다, 뿌리는 남기고 가지를 바꾸는 일, 그게 바로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늘 잘해온 방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