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볼때 한 1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전문직 시장은 단순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벌 만들고, 국시 본다음 자격증 따고, 큰 회사나 로펌, Big 4에 들어가면 일단 커리어를 잘 시작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변호사는 리서치하고 문서 쓰고, 컨설턴트는 자료 정리해서 슬라이드 만들고, CPA는 숫자 맞추고 리포트 정리하면 됐다.
당연히 이런 일들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시작할수 있으니까. 그리고 일 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는것도 가능했다.
사람을 많이 뽑고, 주니어를 갈아 넣고,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되는 방식이었다.
한국 부모님들이 자식 변호사, 회계사 시키려고 그렇게 안달이 났던 이유도 그래서다. 시스템에 일단 들어가면 알아서 굴러간다는 믿음.
그런데 지금은 그 레일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내가 본 이번 AI 웨이브는 좀 다르다.
닷컴 버블 때처럼 거품이 아니라, 모바일 시프트 때처럼 구조 자체가 바뀌는 종류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 하필이면 한인 가정에서 자식 키워 보내는 그 직업군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사례 1: 김민준 씨, 뉴욕 로펌 어소시에이트 3년차
지난번에 한인 모임 갔다가 만난 사람 얘기다. 가명으로 김민준이라 하자.
로스쿨 나와서 뉴욕 미드사이즈 로펌에서 corporate M&A 어소시에이트로 일하는 3년차.
연봉 $220K, 빌러블 아워 2,000시간 찍는, 누가 봐도 잘 풀린 케이스. 그런데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잠이 안 와요. 작년에 입사한 1년차들이 Harvey AI 깔고 나서 due diligence 문서 review하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파트너들이 빌러블 아워 줄어든 걸 못 본 척 안 해요. 예전엔 어소시에이트 5명 갈아서 한 deal 끝냈는데, 이제 3명이면 돼요. 그럼 그 2명은 어디로 가요?"
이게 현실이다. 클라이언트도 이제 빌링 인보이스 받으면 묻는다.
"이거 AI로 하면 더 빨리 되는 거 아닙니까?"
참 불편한 질문이다. 맞는 말이니까 더 불편하다.
작년에 어떤 Fortune 500 GC(General Counsel)는 외부 로펌에 대놓고 말했다고 한다.
"AI로 처리 가능한 작업은 빌링하지 마세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판례 검색, 계약서 초안, 1차 리뷰 같이 기존에 로펌 돈벌이던 이런 게 다 무료 서비스가 됐다는 거다. 어소시에이트의 존재 이유 그 자체가.
로펌 파트너들도 당황스럽다. 예전에는 어소시에이트를 많이 뽑아서 리서치와 문서 작업에 투입하고, 그 시간을 시간당 $400~600에 클라이언트에게 청구하는 구조였다.
이게 미국 로펌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모델의 핵심 동력이 빠지고 있다.
Latham & Watkins, Allen & Overy, Wilson Sonsini 같은 곳들이 다 AI 툴에 수천만 달러씩 투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효율성 증대"라고 하지만, 진짜 메시지는 "주니어 덜 뽑겠다"는 거다.
사례 2: 박지영 씨, MBB 컨설턴트 4년차
지인 친구 중에 시카고에서 McKinsey 컨설턴트 하는 분이 있다. 박지영이라고 하자.
와튼 MBA 출신에 컨설팅 4년차. 작년에 만났을 때만 해도 "AI 시대에 컨설팅이 더 중요해진다"고 자신감 넘쳤다.
그런데 올해 추수감사절에 다시 만났더니 톤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빠, 우리 회사도 ChatGPT Enterprise 깔았어요. 그건 좋은데... 클라이언트들이 이제 자기네 내부 분석팀한테 GPT-4 붙여줘요.
그 친구들이 만든 deck이 우리 어소시어트가 만든 거랑 큰 차이 없어요. 가끔은 더 나아요. 자기 회사 데이터를 알잖아요.
우리는 이제 '왜 우리한테 돈 줘야 하는지'를 매번 증명해야 해요."
예전에는 멋진 단어 몇 개 넣고, 매트릭스 차트 예쁘게 만들고, "전략적 전환이 필요합니다(strategic pivot)"라고 하면 꽤 그럴듯했다. 2x2 매트릭스, Porter's Five Forces, BCG Matrix — 컨설팅의 매직 트릭들. 그런데 이제 기업 내부 직원도 AI로 시장 조사하고 프레임워크 짜고 발표 자료까지 만든다.
컨설턴트가 팔던 그 포장지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거다. Walmart, JPMorgan 같은 데는 이미 사내 AI 전략팀 만들어서 외부 컨설팅 의존도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는 게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지영 씨가 마지막에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오빠, MBA 학자금 대출이 아직 $180K 남았는데, 5년 뒤에 내가 partner track 탈 수 있을지 진짜 모르겠어요."
와튼 MBA 출신이 이 말을 한다. 5년 전에 같은 학교 출신이 이런 말 하는 거 상상이나 했을까.
사례 3: 이상훈 씨, Big 4 CPA 시니어 매니저
한인 교회 다니시는 이상훈 집사님 얘기도 비슷하다. CPA 업계는 더 빨리 잘리고 있다.
"동생, KPMG에서 작년에 글로벌하게 audit 인력 5% 정도 잘랐어요. AI 자동화 효과가 크죠. Confirmation, sampling, reconciliation. 우리 스태프 1년차가 하던 일을 이제 시스템이 다 해요. 그럼 그 1년차는 뭐 해요? 안 뽑아요. 안 뽑는 거예요."
단순 기장, 분류, 신고 준비, 문서 검토는 자동화가 무서운 속도로 들어온다. 물론 최종 책임과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한다. SOX 감사 결과에 사인하는 건 결국 파트너다.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판단 못 하는 사람은 점점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냥 GAAP 규정 외워서 처리하던 시대, IRC section 외워서 세금 신고 처리하던 시대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런 기계적 작업은 진짜 기계가 더 잘한다.
이상훈 집사님이 한 말 중에 가장 무서운 게 있다. "동생, 우리 회사가 한국 KAIST나 SKY 출신 똑똑한 애들 H-1B 스폰서까지 해서 데려와요. 한 명당 $80K짜리. 그런데 그 애들이 하던 일을 이제 GPT가 해요. 스폰서 비용보다 ChatGPT 구독료가 훨씬 싸요."

고인물들의 우아한 헛소리
여기서 재미있는 건 업계 시니어들, 소위 "고인물"들의 반응이다. 컨퍼런스 가면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AI는 보조 도구일 뿐입니다(AI is just a tool)." "사람의 판단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AI 시대에 인간의 가치가 더 중요해집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같은 사람들이 LinkedIn에서는 "AI-powered transformation"을 외치면서, HR 시스템에서는 채용 헤드카운트를 줄인다.
말로는 사람의 가치가 중요하다면서, 실제로는 사람이 덜 필요한 구조로 천천히 바꾸고 있다. 참 품격 있는 구조조정이다. 해고(layoff)라고 하면 보기 안 좋으니까 "operational efficiency improvement"라고 부른다. 채용 동결(hiring freeze)은 "talent optimization"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포장하면 좀 덜 잔인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bottom line은 똑같다. 사람을 덜 쓴다는 거다.
특히 짜증나는 게 이거다. 이 시니어들은 자기들이 주니어였을 때 시간 갈아 넣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 사다리는 자기들이 다 올라간 다음에 걷어차고 있다. "요즘 애들은 AI 잘 활용해서 일을 빨리 끝내야지"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빨라진 만큼 누가 잘리는지는 말 안 한다. 효율이라는 말 뒤에 숨은 사람들이 누군지는 침묵한다.
그래서 누가 살아남는가
이건 단순히 "공부 잘하던 한인 자식들 망했다"는 한탄을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다. 미국 전문직 시장은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학벌과 자격증만으로 버티던 안전지대(safe zone)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Harvard JD, Wharton MBA, CPA, 이런 타이틀이 무가치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해진다는 거다.
그럼 누가 살아남나? 내가 텍사스에서 IT 시니어로 일하면서 본 패턴이 있다. 살아남는 사람은 AI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고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첫째, 도메인 전문성이 깊은 사람. AI가 그럴듯하게 만든 contract clause를 보고 "이거 Delaware 법원에서 enforce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변호사. AI가 만든 모델을 보고 "이 가정이 우리 산업에서는 안 맞아요"라고 짚어낼 수 있는 컨설턴트. AI가 정리한 재무제표를 보고 "이 revenue recognition은 ASC 606 위반입니다"라고 잡아낼 수 있는 회계사.
둘째, AI 툴을 진짜로 잘 쓰는 사람. 단순히 ChatGPT에 질문 던지는 수준 말고, 자기 워크플로우에 AI를 깊게 통합해서 한 사람이 옛날 5명 몫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회사 입장에서는 ROI가 미친 듯이 좋다. 안 자른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AI는 책임을 안 진다. 책임지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판단력, 윤리, 클라이언트 관계, 분쟁 해결 — 이런 "soft skill"이라 폄하되던 것들이 사실은 마지막까지 남는 진짜 가치다. 이건 학교에서 안 가르친다. 현장에서 깨지면서 배운다.
그래서 내 생각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자식들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 시키려고 학자금 대출 받아서 명문대 보내는 그 공식이 이제는 작동 안 할 수도 있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미국 전문직 시장 곳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직업군의 안전지대는 좁아지고 있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AI가 만든 초안을 평가할 수준이 있습니까? AI가 놓친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습니까?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으면 살아남는다. 못 하면 시장은 차갑게 반응할 거다.
자식 키우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명문대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AI 시대에 대체되지 않는 판단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다.
이건 학교가 안 가르쳐 준다. 부모가,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키워야 한다.
늦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존버는승리
라떼Fo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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