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에 산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이 도시가 세상의 중심 같았고,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많던 로망 중 하나였던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는 끝내 내 기대를 배신하고 말았다.
요즘 한국, 특히 서울은 자전거 천국이다. 오랜만에 귀국했을 때 깜짝 놀랐다. 한강변 자전거도로는 물론이고, 도심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줄줄이 연결되어 있고, 공공 자전거 ‘따릉이’는 심지어 어플로 쉽게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 연계도로 시스템이 기가 막혀서 마치 도심 속 자전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특히 ‘국토종주 자전거길’ 같은 건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온다. 북한강 따라 춘천까지 가는 코스를 달릴 때는, 여기가 진짜 대한민국이 맞나 싶었다.
또 얼마 전엔 LA 출장길에 잠시 자전거를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도 요즘은 자전거 전용 도로가 곳곳에 깔려 있어서 놀랐다. 예전엔 LA도 차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도시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제는 건강과 친환경을 고려한 도시 디자인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내 현실로 돌아오자. 맨해튼은 여전히 자전거 타기 ‘힘든 도시’다. 자전거도로? 물론 있다. 근데 그게 ‘있다’고 해서 ‘편하게 달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차선 하나를 억지로 자전거 전용으로 만들긴 했는데, 택시랑 트럭이 수시로 점령해 있고, 배달 오토바이들이 휙휙 끼어들고, 도로는 울퉁불퉁. 오히려 더 위험하다.
플러싱이나 퀸즈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인타운 쪽은 길이 좁고, 차량은 늘 정체 상태에, 자전거를 탈 엄두조차 안 난다. 자전거도로라고 표시돼 있는 곳도 있지만, 실제로는 주차된 차량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뉴욕은 자전거를 도난당할 확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가 처음 자전거를 잃어버린 건 플러싱 한인마켙 근처였는데, 두 번째는 아예 집 앞에서. 그 이후로는 자전거를 사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한국처럼 보관시설이나 CCTV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에서 대여하는 CitiBike도 항상 가까이에 있는 건 아니라서 실용성도 떨어진다. 그리고 CitiBike는 외곽 또는 치안 불안 지역에서 도난 비율이 높아, NYC가 공식적으로 “도난이 많았다”고 언급할 정도라고 한다.
뉴욕은 세계 최고의 도시라지만, 자전거 인프라만큼은 아직 멀었다. 환경도 생각하고 건강도 챙기고 싶지만, 지금은 자전거 탈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너무 열악하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뉴욕도 서울처럼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도로 위에서 생존게임 하듯 달리는 게 아니라, 여유롭게 바람 맞으며 도시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그날까지… 나는 그냥 조심히, 가끔씩만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