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004년이었다. 이민이라는 큰 결심을 하고 낯선 땅에 와서 모든 게 새롭고 두려웠지만, 그 와중에 내게 큰 의미가 되었던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의 첫 차, 2004 닛산 센트라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난 차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한국에서야 대중교통이 주 이동수단이었고, 내가 직접 운전할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미국은 달랐다. 어디든 차 없이는 움직이기 힘들었고, 차는 곧 생존 수단이자 독립의 상징이었다. 영어도 서툴고 길도 헷갈리던 시절, 딜러샵에서 마주한 은색 닛산 센트라는 마치 나를 반겨주는 친구 같았다.
중고차였지만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작지만 실용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닛산은 "외국에서 만든 차"였다.
사실 친구들 중에는 토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를 타는 이들도 있었지만, 난 내 센트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동을 걸 때 들리던 그 경쾌한 엔진 소리, 조심스레 첫 고속도로를 달리던 날의 떨림, 그리고 한밤중에 라디오를 틀고 드라이브하던 그 시간들...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현대 투산을 타고 다닌다. 확실히 기술력이나 편의 사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아졌다. 내비게이션도 훨씬 똑똑하고, 승차감도 부드럽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단출하고 성실하던 센트라가 그립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게 서툴고 두려웠지만, 그 차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요즘 닛산을 보면 마음이 좀 씁쓸하다. 한때 혼다, 토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브랜드였는데, 요즘은 그 위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르노와의 합병 이후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예전 닛산은 "튼튼하고 오래가는 차"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엔진 내구성부터 전반적인 기술력까지 실망스럽다는 평이 많다.
친구 중 하나는 최근에 페스파인더를 탔다가 7만마일에 엔진고장이 잦아져 현대차로 바꿨고, 또 다른 친구는 닛산의 무라노를 타다가 CVT 미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서 결국 헐값에 팔았다고 한다. 인터넷을 봐도 예전처럼 닛산을 추천하는 글은 드물고, 오히려 피하라는 이야기들이 많다. 뭔가 안타깝다. 내 첫 차 브랜드가 이렇게 외면받는 걸 보니...
물론 세월이 흐르며 자동차 시장도, 소비자 기준도 많이 변했다. 기술력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전기차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도 등장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닛산은 어쩌면 너무 오래된 방식에 머물러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혁신이 부족했거나, 소비자 신뢰를 관리하지 못했거나.
그래도 내겐 닛산은 '처음'이라는 특별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내 차가 생겼던 날,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서 있던 주차장의 기억. 비록 지금은 다른 차를 몰고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백미러에 비치는 햇살을 보며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닛산이 예전만큼의 명성을 회복하긴 어렵겠지만, 나처럼 한때 닛산과 함께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겐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첫 차라는 건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한 시절을 함께한 동반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