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플러싱에 정착한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골목골목 한국어 간판이 가득했고, 대형 마트에서는 한국의 제철 나물부터 막 담근 김치까지 다 살 수 있었다. 교회, 학원, 미용실, 병원까지… 이 작은 도시 안에서 한국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에 외로움보단 안도감이 먼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자주 드는 생각. “많기만 하던 우리 이웃들, 다 어디 간 걸까?”

예전엔 플러싱 메인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아이들 학교에서, 마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인연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들은 뉴저지나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간다고 하고, 은퇴하신 분들은 텍사스나 조지아 같은 남부 지역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플러싱 내 한인 인구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도 봤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높아진 집값과 생활비, 그리고 교육·환경 개선을 원하는 젊은 세대의 이주다.

플러싱은 여전히 대중교통이 좋고, 한식 문화가 남아 있지만, 혼잡한 도심 분위기, 주차 지옥, 낙후된 인프라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으면서, 길거리에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엔 손님들로 북적였던 국밥집, 미용실, 한의원들이 사라지면서 골목마다 'For Lease' 간판이 붙어 있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졌다.

또 하나, 세대 간 단절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플러싱의 많은 1세대 한인들은 여전히 한국어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자녀 세대는 영어 중심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문화적 거리감이 커지다 보니, 젊은 세대는 플러싱 내 한인 커뮤니티보다 더 넓은 미국 사회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고 있다.

나는 요즘도 매주 마트에 가고, 한의원에 들르고, 교회도 다니지만, 늘 느끼는 건 ‘이전만 못하다’는 씁쓸함이다. 명절이 되어도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고, 마트 진열대에도 한국 신선 식품이 늦게 들어오거나 품절된 경우가 많다. 교회 새가족 소개 시간엔 이제 거의 타민족 이민자들이 들어오고, 한인 신도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어쩌면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뮤니티는 흩어지고, 또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플러싱에서 한글 간판을 볼 때마다, 마주치는 어르신들과 “안녕하세요” 인사 나눌 때마다, 그 익숙한 따뜻함에 위안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자주 걱정이 된다.

“내가 자주 가던 교회, 이발소, 식당은 계속 문을 열고 있을까?”

이 도시에 남아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 플러싱을 ‘한국 이민 1.5세대의 고향’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변화가 그저 세월의 흐름으로만 치부되길 원치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세대의 한인들이 플러싱을 다시 찾아오고, 이 도시가 또 한 번 활기를 되찾을 날이 오길 조용히 기대해본다.

그때까지는, 내가 여기를 지키는 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