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항을 자주 다니다 보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게 되는 방송이 있습니다. 바로 last call for boarding입니다.

한국 공항에서는 가끔 듣는 말이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일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처음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아직 이륙예정 시간도 20-30분정도 남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만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를 수백 번 타보니 이제는 이 방송이 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됩니다.

미국 국내선 비행기는 마지막 보딩 시간이 매우 엄격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보통 출발 시간 15분 전에는 보딩이 완전히 종료되고, 이때 게이트 문이 닫힙니다. 티켓에 표시된 출발 시간이 10시라면, 9시 45분에는 이미 탑승이 끝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시간을 넘기면 비행기가 아직 주기장에 있어도 탑승은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알고 보면 단순한데 시스템상 미국 공항은 늦는 사람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습니다. 공항 자체가 크고, 하루에 오가는 승객 수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뉴욕 JFK, 애틀랜타, 시카고 오헤어, LA 같은 대형 허브 공항은 한 게이트에서 새벽부터 자정무렵까지 하루에만 수십 편의 비행기가 연달아 들어왔다 나갑니다.

여기서 비행기 한 대만 지연돼도 그 영향이 도미노처럼 다음 비행기, 그다음 비행기까지 줄줄이 밀리게 됩니다. 그러니 마지막 승객 한 명 때문에 이미 탑승을 마친 200명 넘는 사람을 기다려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미국 특유의 이동 패턴도 한몫합니다. 미국은 땅이 워막 크다보니까 직항노선보다 도시를 거쳐서 목적지로 향하는 환승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덴버공항, 애틀랜타, 댈러스, 시카고 같은 공항은 거의 환승전문 공항입니다. 한 비행기가 조금만 늦게 도착하면 다음 연결편을 놓치는 승객이 한둘이 아닙니다.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지각한 승객 한 명보다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하는 수십 명의 환승 승객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탑승 마감 시간은 정말 칼같습니다.

보딩끝난 게이트까지 숨차게 뛰어온 사람을 막아서고 비행기가 코앞에 보이는데 태워달라는 사람의 사정을 거절하는 담당직원이 처음엔 냉정해 보이지만 그들의 설명은 한결 같더군요. 우리는 last call 방송을 분명히 했기때문에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문히 닫힌 비행기는 다시 열 수 없는게 규정이다라고 지나가다 옆에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뉴스에 나왔었던 last call for boarding 방송이 나와도 늦게 오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니까 공통된 이유가 있었더군요.

첫째, 출발 시간과 보딩 마감 시간을 헷갈리는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티켓에 적힌 출발 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아직 비행기 안 떴으니 괜찮겠지 하고 판단하다가, 보딩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게이트 앞에서 알게 됩니다. 미국 공항에서는 출발 15분 전이면 이미 문이 닫힌다는 상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째, 모바일 체크인에 대한 과신입니다. 컴퓨터나 전화기로 체크인을 했으니 조금 늦게가도 문제없을거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모바일 체크인은 좌석 확보일 뿐 탑승 보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공항 안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보안 검색에서 지연돼도 자기는 이미 체크인 했다고 시간 감각이 무디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셋째, 공항 동선과 거리 계산 실패입니다. 미국 대형 공항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ㅎㅎ. 저도 처음가본 심지어는 좀 익숙한 공항에서도 게이트까지 한 5분이면 갈 줄 알았는데 15분 넘게 걸리는 일도 흔하게 발생 합니다. 트램 이동, 터미널 이동, 게이트 변경까지 겹치면 last call을 듣고도 게이트까지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래서 국내선이라도 무조건 1시간 이전에 공항에 와서 게이트 정보를 재 확인 하라는 말이 나오는겁니다.

그리고 last call for boarding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미국 공항 특유의 보안문제도 얽혀 있습니다. 간혹 프론트에서 짐까지 체크인 했는데 승객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람 짐을 다시 내려야 합니다. 이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립니다. 짐 하나 내리느라 비행기 전체 출발 시간이 흔들리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항공사와 다른 승객들에게 돌아갑니다. 저도 탑승하지 않은 승객의 짐을 내려야 하니까 이륙시갖이 15분 지연되고 있다는 기내방송을 들은적이 몇번 있습니다.

그래서 last call 방송은 사실상 친절한 안내가 아니라 마지막 경고에 가깝습니다. 지금 안 오면 당신은 이 비행기를 못 탄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방송을 듣고도 여유롭게 커피 들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꼭 있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방송은 더 단호해지고 늦은사람 이름까지 직접 불러줍니다.

그래도 안 오면 끝입니다 ㅎㅎ. 미국 공항은 승객 하나 하나 개인의 사정보다 대중을 위한 시스템이 우선이고, 탑승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결국 미국 공항의 last call 방송은 공항이 더 불친절해진 게 아니라, 시대가 바뀌면서 더 엄격해진 신호입니다. 미국에서 비행기 탈 때는 체크인 여부보다 중요한 게 제시간에 게이트 앞에 서 있느냐입니다.

공항은 기다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제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만 태워주는 곳이라는 사실을, last call  방송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last call 방송을 이젠 즐겨(?) 듣습니다. 영어권에서 발음 어려운 last name인 인도사람 Subramanian, Chandrasekhar 그리고 동남아 Nguyen 이나 Phongsavanhs 을 버벅거리며 부르는 방송을 듣는게 나름 재미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