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에 살다 보면 공기만 답답한 게 아니라 마음까지 우울하거나 갑갑한 순간이 가끔 있죠 ㅋ
그래서 가방하나 챙기고 국도를 따라 네바다 리노까지 2박 3일 로드트립을 다녀왔습니다. 출발은 토요일 아침, 아직 햇살이 강하게 퍼지기 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사막 풍경은 도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고,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끝없는 도로가 벌써부터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중간에 바스토우 근처에서 잠시 쉬며 주유하고, 작은 다이너에서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이게 바로 로드트립의 묘미 같아요. 유명한 맛집이 아니어도, 길 위에서 만나는 소박한 음식들 ㅋ.
점심 무렵에는 데스밸리 근처를 지날 때 잠깐 차를 세우고 바람을 쐬며 멍하니 사막을 바라봤습니다. 햇볕이 장난 아니게 뜨거웠지만, 그 열기 속에서 오히려 묘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질 때쯤에는 라스베가스를 거쳐 조금 더 달려 첫날 밤을 묵을 모텔에 도착했습니다. 화려한 카지노 불빛을 스쳐
지나가며 '여기서 하루 묵을까' 고민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단순히 달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굳이 머물지 않고 길을 이어갔죠. 베가스 호텔요금이 비싸기도 했고.
베가스에서 20마일쯤 동쪽으로 달려서 멀쩡해보이는 모텔에 도착해 샤워하고 누우니 몸에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풀리며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다시 도로에 올랐습니다. 네바다로 접어들수록 도시는 점점 사라지고 길고 고요한 도로만 이어졌습니다. 음악도 끄고 엔진 소리만 들으며 달리다 보니,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더군요. 차창 너머로 보이는 황량한 들판과 먼 산맥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마저 주었습니다.
점심은 작은 주유소 옆 샌드위치 가게에서 간단히 해결했는데, 의외로 빵이 바삭하고 고기가 푸짐해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리노에 도착했는데, 처음 와봐서 낮설었지만 작은 카지노 건물들과 풍경이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는 미리 예약해 놓은 다운타운의 작은 카지노 호텔에 묵었는데, 카지노에서 소소하게 블랙잭을 해본 게 기억에 남습니다. 25불 테이블이어서 300불 바꾸고 앉아서 재미 삼아 즐겨본 거였죠. 따고 잃고 반복하다가 50불 잃고 일어섰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다시 차에 올라 LA로 돌아오는 길은 묘하게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길인데도 올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여유롭고 머릿속이 정리된 듯했습니다.
국도를 따라 며칠간 달리며 느낀 건, 결국 여행이라는 게 대단한 목적지가 아니라 달리는 과정 속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되어준다는 사실이었어요. 엘에이에서 답답할 때, 국도를 따라 네바다까지 한 번쯤 달려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