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는 게 통장에 돈 좀 있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는 거다.

집을 사려고 해도, 차를 할부로 사려고 해도, 심지어 아파트 렌트 하나 알아보려 해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What's your credit score?" 이 숫자 하나가 안 되면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문이 안 열린다.

한국에서 경력 있고, 직장도 있고, 돈도 준비해왔는데 크레딧 히스토리가 없다고 디파짓을 두 배로 내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크레딧 점수에 대해 현실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뜬구름 잡는 글 말고, 실제로 미국에서 살면서 체감하는 이야기다.

FICO 점수, 숫자가 곧 등급이다

미국 신용점수는 FICO 기준으로 300점에서 850점까지다. 740점 넘으면 "괜찮은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780점 넘어가면 거의 honor student 수준이다. 이 점수 차이가 real money로 직결된다.

같은 차를 사도 누군가는 APR 4%로 끊고, 누군가는 10%짜리 페이먼트 이자율을 받는다. 

모기지는 더 극적이다. 30년 고정 모기지에서 0.5%p 이자율 차이가 나면 총 상환액이 수만 달러 벌어진다.

결국 크레딧 점수는 "신용을 증명하는 숫자"가 아니라 "돈을 아끼는 무기"다.

이걸 빨리 이해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자산을 빨리 쌓는다.

첫 번째 룰: 연체는 절대 금지

FICO 점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payment history다.

대략 35% 정도다. 카드값 하루라도 늦으면 기록이 남고, 한번 남은 기록은 최대 7년간 따라다닌다. 하루 깜빡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맞다. 그런데 이게 미국 시스템이다. 공정한지 따지는 것보다 적응하는 게 빠르다.

답은 간단하다. autopay 걸어둬라. 최소 금액이라도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설정해두면 연체 사고는 원천 차단된다. 내가 IT 엔지니어라서 이런 자동화 얘기를 자주 하는 건데, 사람 의지에 기대는 시스템은 반드시 fail한다. 시스템으로 막아라.

두 번째 룰: 사용률 30% 룰을 지켜라

Credit utilization ratio. 한도 대비 실제 사용 금액의 비율이다. FICO에서 약 30% 비중을 차지한다. 한도가 $10,000이면 $3,000 이하로 유지하는 게 안전하다. 한도를 꽉 채워 쓰면 카드 회사 입장에서는 risk signal이다. "이 사람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나?"라고 본다.

돈이 있어도 한 번에 크게 쓰고 statement date에 잔액이 높게 잡히면 점수가 내려간다. 그래서 중간중간 갚아가면서 쓰는 게 유리하다. 이건 실제 재정 상태와 무관하게 점수 관리의 기술이다. 결국 게임의 룰을 아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다.

세 번째 룰: 오래된 카드는 버리지 마라

Credit age, 즉 신용 기록의 평균 연수가 점수에 영향을 준다. 처음 만든 카드가 10년 됐다면 그건 그 자체로 자산이다. 연회비 없는 카드라면 닫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지갑에 넣어두고 한 달에 한 번 커피 한 잔 결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괜히 "카드 정리한다"고 오래된 카드 닫았다가 평균 credit age가 줄어들면 점수가 내려간다.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안 쓰는 카드는 정리하자"는 게 미국에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 이것도 시스템의 룰이다. 룰을 모르면 손해보는 건 본인이다.

네 번째 룰: Hard inquiry를 함부로 만들지 마라

카드 신청이든 대출 신청이든, 할 때마다 hard inquiry가 들어간다. 이게 단기간에 여러 번 반복되면 "이 사람 돈이 급한가?" 하는 시그널이 된다. 점수도 내려간다. 한꺼번에 3~4개 카드를 신청하는 건 최악의 수다.

필요할 때 하나씩, 천천히 가는 게 정답이다. 미국 시스템은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한테 관대하지 않다. 이건 비단 크레딧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long game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다섯 번째 룰: Credit mix를 다양하게 가져가라

카드만 달랑 있는 것보다, 자동차 할부(auto loan)나 소액 대출(personal loan) 같은 다른 종류의 신용 기록이 있으면 프로필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FICO도 credit mix를 본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점수 올리기 어려운 구간에서는 이게 차이를 만든다.

물론 점수 올리겠다고 일부러 빚을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auto loan, student loan 같은 게 정상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포인트는 "다양한 신용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기록이다.

이민 초기에 크레딧 쌓는 건 솔직히 답답하다. 기록이 없으니 점수가 안 오르고, 점수가 없으니 좋은 조건을 못 받고, 좋은 조건을 못 받으니 더 비싸게 살게 된다. 전형적인 catch-22다. 그런데 이건 시간이 해결한다. 연체 안 하고, 사용률 관리하고, 오래 가져가는 것. 이 세 가지만 꾸준히 하면 700 넘고, 750 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에서는 소득보다 신용이 더 세게 먹히는 순간이 진짜 많다. 이거 관리 잘하는 게 진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