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미국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TV 뉴스나 영화 속에서 수도 없이 보던 바로 그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하얗고 고전적인 건축물 하나가 그냥 조용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미국 건국 이후 200년 넘는 시간과 수많은 정치 사건, 분노와 갈등, 타협과 드라마가 켜켜이 쌓여 있다.

미국 독립 직후, 수도는 처음부터 DC가 아니었다. 잠시 뉴욕에 있었다가 필라델피아로 옮겨졌고, 남부·북부 사이 정치적 균형을 위해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자는 타협 속에서 포토맥 강가의 땅이 선택되었다. 그때 제안에 참여했던 사람이 조지 워싱턴이었다는 건 많이들 아는 사실이다.

1793년,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직접 첫 삽을 뜨며 국회의사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건설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예산은 늘 부족했고, 완공 일정은 계속 늦어졌고 설계자는 도중에 바뀌기도 했다. 초기 의사당 모습도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돔도 없었고, 양쪽으로 날개를 달기 전의 비교적 단순한 구조였다.

그러다가 1812년 전쟁이 터지고, 1814년 영국군이 워싱턴 DC에 침입해 건물에 불을 질러 내부 대부분이 소실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역사책 속에서 "영국군이 하얀 집을 불태웠다"는 말이 바로 이 때 일이다. 당시 남은 건 외벽 일부와 탄 흔적뿐이었다. 그야말로 잿더미. 그래도 건물을 없애지 않고 재건하기로 결정한 것이 지금의 국회의사당의 운명을 바꿨다.

재건 과정에서 오늘날의 상징인 거대한 돔(Dome)이 설계에 포함됐다. 높고 둥근 돔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미국의 이상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라 불린다. 당시 철제 구조와 섬세한 패널을 쌓는 기술이 쉽지 않아 공사 기간도 길었다.

남북전쟁 중에도 도중에 공사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지어 올렸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는 "연방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들 말한다. 결국 1866년, 돔은 완성된다.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의사당의 실루엣이 완성된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중앙 로툰다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원형 홀 천장에는 미국 건국 신화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링 형태의 복도와 회랑이 이어지며 상·하원으로 갈라진다.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은 별도 건물처럼 양쪽 날개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영어 표현으로도 "The Hill"이라 부르는 이유가 된다. 법안이 상원과 하원 사이를 오가며 싸우고 협상하고 다듬어지는 곳이 바로 이 언덕 위 건물이다.

국회의사당 앞 계단은 대통령 취임식 장소로도 유명하다. 추운 겨울, 두꺼운 코트를 입은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장면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장면이다. 내려다 보면 몰(Mall) 방향으로 뻗은 길 끝에 워싱턴 기념탑이 똑바로 보인다. 도시 설계 자체가 상징적 시선 축을 고려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역사라고 해서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국회의사당은 민주주의 탄생의 현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갈등과 분열의 중심이기도 했다. 노예제 문제를 두고 의원들이 언성을 높였고, 남북전쟁 직전에는 의사당 안에서 누구는 책상을 내던지고 누군가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싸웠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이 건물은 미국 정치의 축소판이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장소, 법안이 태어나고 폐기되는 곳, 때로는 희망을 주고 또 때로는 실망을 주는 곳.

시간이 흘러 DC에 여행을 가보면 이 의사당은 그냥 관광지 이상이다. 하얀 벽과 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잔디밭에서 도시락 먹는 사람들, 단체로 견학온 학생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시위 피켓을 든 시민까지.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이곳이 겪어온 무게는 건물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건물이 완성된 건 단순히 벽돌과 대리석을 쌓아 올렸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전쟁·타협·비판·환호·분열, 모든 감정과 사건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국회의사당을 만든 것이다. 멀리선 우아한 흰 돔이지만, 가까이 보면 스크래치와 흔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은 건물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태어난 정치의 상징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