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손 올소울즈 프로세션, 죽은 이를 위해 도시가 걷는 밤 - Tucson - 1

오늘도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에게. 한낮 햇볕은 아직 따가운데 해가 지면 바람 끝이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사막에도 가을은 이렇게 조용히 옵니다.

이맘때가 되면 동네 사람들 입에서 슬슬 한 행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투손의 All Souls Procession, 먼저 떠난 이들을 기리며 도시가 함께 걷는 밤이지요.

처음 그 행렬을 봤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골 분장을 한 얼굴들, 손에 든 사진 액자, 촛불과 북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축제인가 장례인가, 한참을 서서 헷갈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였습니다. 슬픔을 숨기지 않되, 그 슬픔을 함께 들어주는 자리였던 거예요.

시작은 1990년,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적인 애도였습니다. 지역 예술가 수전 존슨(Susan Johnson)이 아버지를 잃고, 그 상실을 퍼포먼스로 풀어낸 것이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미술치료를 공부했고, 칼 융이 연구한 세계 여러 문화의 의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슬픔을 혼자 삭이지 않고 형태로 만들어 밖으로 꺼낸 셈입니다.

1998년에는 공연 단체 Flam Chen을 이끌던 나디아 헤이건-오눅타브에게 연출이 넘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서커스 공연과 음악가들이 더해지며 지금의 피날레 의식이 갖춰졌다고 하네요.

지금은 Many Mouths One Stomach라는 지역 비영리 단체가 행사를 꾸립니다. 예술가, 교사, 지역 활동가들이 모인 모임이에요.

제가 이 행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큰 기업 후원이나 상업 광고 없이, 주민들 손으로 굴러가는 행사라는 점이지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필요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전통. 관청이 기획한 축제보다 이런 게 훨씬 오래 가고 단단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걸 멕시코의 Dia de los Muertos와 같은 것으로 압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행사예요.

망자의 날은 오래된 고유 명절이고, All Souls Procession은 예술가들이 만든 비교적 새로운 의례입니다. 행렬은 보통 망자의 날 다음 주 일요일에 열립니다.

그렇다고 선을 긋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문화권의 애도 방식이든 받아들이고, 국경이 가까운 지역이라 망자의 날 장식을 곁들이는 사람도 많지요.

올해 2026년은 37번째 행렬입니다. 본 행사는 11월 8일 일요일이고, 11월 6일부터 주말 내내 관련 행사가 이어집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부터 Grande Avenue에 모이고, 행렬은 저녁 6시에 출발합니다. 시간 맞춰 가려면 조금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코스는 도심 서쪽, Menlo Park와 Barrio Hollywood 동네를 지납니다. 길이는 2마일, 전부 사람의 발과 손으로 움직이는 행렬이에요.

마지막은 Mercado 일대에서 열리는 피날레입니다. 거대한 철제 조형물 The Urn을 태우는 의식이지요.

이 Urn 안에는 사람들이 써낸 기도문, 사진, 편지가 가득 담깁니다. 누구든 떠난 이를 위한 쪽지를 넣을 수 있어요. 종이 한 장이지만 쓰는 손끝은 다들 조심스럽습니다.

불이 올라가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조용해집니다. 그 정적이 참 묘합니다. 떠들썩하던 거리가 한꺼번에 숨을 고르는 느낌이랄까.

저도 몇 해 전에 먼저 간 친구 이름을 적어 넣은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가벼워지더군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슬픔을 속으로 삼키는 데 익숙하지요. 제사도 집안 식구끼리 조용히 지내고요. 남 앞에서 우는 걸 흉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모르는 사람이 내 옆에서 자기 어머니 사진을 들고 걷습니다. 서로 말 한마디 안 해도 괜찮아요.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처음 가시는 분께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해가 지면 기온이 꽤 내려가니 겉옷을 챙기세요.

도로 통제가 넓게 걸리니 차는 멀찍이 두고 걷는 편이 낫습니다. 통제 구간과 주차 안내는 행사 직전 시와 주최 측 공지를 꼭 확인하시고요.

그리고 구경꾼으로만 서 있지 말고 한 번쯤은 행렬 안으로 들어가 보시길. 사진 한 장, 이름 한 줄이면 됩니다. Just walk with them.

종교가 무엇이든, 어디서 왔든 상관없는 자리입니다. 그게 이 행사가 30년 넘게 이어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11월에도 저는 그 길 위에 있을 겁니다. 떠난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는 방법으로, 저는 이만한 걸 아직 못 찾았거든요. 해마다 넣을 이름이 하나씩 늘어가는 게 서운하긴 해도 말입니다.

당신에게도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날 저녁 함께 걸어요. 서늘한 바람 속에서 다시 편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