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말 채찍을 말아 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저 멀리 인디안의 북 소리 들려오면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몰아치는 채찍 아래 역마차는 달려간다새파란 지평선에 황혼이 짙어오면초록 포장빛 저 들은 조각달만 외로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어릴 적 아버지가 술에 기분 좋게 취했을 때 늘 부르시던 노래라서 기억에 남아 찾아본 노래가사 입니다.
바로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곡이었죠.
그 시절 저희 집 거실이나 마당에서 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면 반드시 이 노래가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에게 아리조나라는 이름과 카우보이라는 이미지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자유와 낭만, 그리고 어떤 이상향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한국 대중가요 속에서도 꽤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한국 땅과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아리조나'라는 지명이 들어가고, 카우보이라는 서부 개척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끌고 가죠.
당시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빠르게 변하던 시기였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서부 영화 속 카우보이는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와 모험을 대신 그려주는 아이콘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이 노래를 좋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겁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아리조나의 카우보이"라는 가사를 입에 담으면, 현실의 무게와 피곤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거죠.
아버지 세대에게는 낯설지만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 서부의 광활한 풍경과, 자유롭게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의 모습이 하나의 해방감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노래 가사를 곱씹어보면 광야와 사막,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모두 속박 없는 자유의 은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카우보이가 가진 거친 매력, 외로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고생하며 가족을 책임지던 가장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건, 단순히 곡조가 흥겨워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투영하고 위로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이 노래가 단순히 아버지의 주량과 함께하는 흥겨운 장면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목청껏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부를 때, 그 안에는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는 아직 꿈꾸는 사람이다"라는 선언 같은 게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들고 고단한 하루가 끝났을 때, 노래 속 카우보이가 되어보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소박하지만 진솔한 낙이었을 겁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제가 나이가 들고 아버지가 부르던 그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그 노래를 다른 시선으로 듣게 됩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재미있고 낯선 외국 이름이 들어간 노래라 신기했는데, 지금은 가사 속 자유와 낭만이 아버지 세대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였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고인이 되신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는 단순한 가요 한 곡이 아니라, 아버지의 세대가 꿈꾸던 자유와 해방, 그리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던 노래였습니다.
아버지가 그 곡을 즐겨 불렀던 이유는, 그 속에 담긴 광활한 아리조나의 이미지와 카우보이의 자유가 그의 삶을 위로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루지애나TIP
옥다방고양이




애리조나 AZ 카우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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