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에 있는 헬스케어 데이터 시스템 관리 회사에서 일한 지 어느덧 7년이 되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미국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미국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프로세스들 속에서 나름 열심히 적응했고, 주어진 업무도 충실히 해왔다.
매년 성과 리뷰에서도 ‘responsible’, ‘accurate’, ‘detail-oriented’ 같은 피드백을 받았고, 팀원들 사이에서도 실수 없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진이라는 건 내게만 유독 멀게 느껴졌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료가 매니저 타이틀을 달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걸 바라보며 묘한 박탈감이 들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의 백엔드 데이터를 세팅했고, 수치 정리도 내가 했다.
그런데 발표도, 공로도, 결국 타이틀도 그 사람의 몫이었다.
속으로는 “운이 좋았겠지”, “저 사람은 워낙 사교성이 좋잖아”라고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뭔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미국 회사에서의 승진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걸 드러낼 줄 아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걸.
나는 항상 보고서를 정리하면 메일에 "attached please find..."로 짧게 요약하고 끝냈다.
내가 몇 시간을 들여 정리한 데이터 분석은 상사의 리포트에 올라가 있었고, 회의에서는 언제나 물어볼때만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하지만 미국식 조직문화에서는 그게 오히려 ‘존재감 없음’으로 해석된다는 걸 너무 늦게 배웠다.
내가 존경하던 한 시니어 매니저는 늘 이런 말을 했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회사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 말이 요즘 들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내가 몰랐던 승진의 비밀은 바로 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매니저로 승진한 동료들은 업무 외 시간에도 리더십 트레이닝 세션에 자원했고, 사내 네트워킹 이벤트에도 빠지지 않고 얼굴을 비췄다.
일이 많고 피곤하다는 이유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내 가능성을 가둔 또 다른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동안 축적해온 나의 전문성과 책임감은 분명 나만의 자산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산을 ‘가시화’할 수 있는 전략도 함께 세워야 할 시기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작게나마 변화를 주고 있다.
회의 전 내 아이디어를 미리 정리해서 짧게라도 꼭 공유하고, 이메일 보고서에도 간단한 인사이트를 덧붙인다.
그리고 상사가 뭐든 물어보면 그냥 답하기보다 내가 맡은 업무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전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미국 회사에서 승진은 실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여주는 실력’과 ‘존재감’이 함께 따라야 한다.
그걸 몰랐던 나는 7년을 묵묵히 달려왔고, 이제야 그 비밀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혹시 나처럼 “왜 나는 아직 이 자리에 머무르지?” 하고 고민하고 있다면, 단지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실력은 충분하다.
이제는, 보여주는 방식만 달라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