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미국 생활 15년.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회사에 취직해서 몸담은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지금은 아틀란타에 있는 의류회사의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일상적인 영어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 이메일 쓰고, 회의하고, 담당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하고, 다 괜찮다.

그런데도 아직도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미국 사람들과는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가 이렇게 힘들까?”

사실 업무관련 설명이나 기술적 대화는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가끔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칭찬받기도 한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농담이 나올 때, 동료가 가족 얘기를 꺼낼 때, 누군가가 은근한 불만을 돌려서 표현할 때…

그 뉘앙스를 못 읽는 순간이 많다.

같이 웃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른 채 따라 웃는것 일상이 되버렸다.

이게 계속 쌓이면 대화는 자연스레 피하게 되고, ‘가깝지만 먼 거리감’이 생긴다.

영어는 기술이다.

어느 순간 숙달되면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다.

눈빛, 침묵의 의미, 농담의 코드, 사과와 감사의 표현 방식…

이건 단어 암기나 회화 연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령 미국에서는 "That’s interesting"이 꼭 좋은 뜻만은 아니다. "I've never seen like that" 도 과장된 표현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처럼 언제 한번 만나서 식사 한번 합시다 같은 "Let’s catch up sometime"도 실제로 만나자는 의미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말은 하는데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 드는 거다.

한국에서라면 그냥 한숨 쉬며 “오늘 진짜 힘들다”고 하면 다 알아듣고 공감해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How are you?”에 “I’m fine, thanks”로 자동 반사하는 분위기다.

물론, 속을 털어놓는 대화도 있긴 하지만, 그건 '친해지고 나서야 가능한 레벨'이다.

그 전까지는 대화가 굉장히 표면적이고 사회적으로 정제된 느낌이다.

그래서 나 같은 이민자는 자꾸 속을 감춘 채 겉으로만 소통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과의 감정 거리감이 커져간다.

요즘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중 스페인에서 온 이민자 출신 직원들과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있다.

다들 “영어는 되는데 사람들하고 정서적으로 연결이 잘 안 된다”고 말한다.

그걸 듣고 나서 조금 위안이 됐다.

이건 영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을 체득하는 시간과 경험의 문제라는 걸.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하고 있다

대화에 억지로 끼려고 하지 않는다. 진짜 궁금한 게 있을 때만 질문한다. 어설프게 웃고 넘기기보단, 솔직하게 "그 말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연습도 해봤다.

공통의 관심사로 연결하려고 한다. 고객의 불만 이야기, 현장 문제, 혹은 커피 취향 같은 작지만 구체적인 대화에서 더 자연스러운 교감이 생긴다.

언어보다 ‘진심’이 먼저임을 기억한다. 잘못 말해도 진심은 통한다는 걸 몇 번의 실수 끝에 깨달았다.

영어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원래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도 출근해서 "Hey Michael, how was your weekend?"

그렇게 작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나만의 미국식 소통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