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닉스에서 애틀랜타로 돌아오는 아메리칸 항공을 탔다.

비행시간이 거의 4시간 가까이 되는 구간이다. 미국 생활 오래 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90년대 대한항공 타고 김포 오가던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어서인지 속으로는 뭔가 하나쯤 나오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았고, 옆에는 중후한 분위기가 넘치는 체격 좋은 중년 신사 두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들어가고 카트가 오길래 '그래도 뭐 하나 나오겠구나' 했는데, 앞에 놓인 건 작은봉지 2개였다.

열어보니 푸석한 프레첼 몇 개. 엄청나게 달달한 쿠키. 그리고 일회용 컵에 따라준 음료. 그리고 끝이다.

옆자리 신사들도 똑같이 받았다.

다같이 나란히 앉아서 봉지를 뜯고 스프라이트를 마시는 모습이, 뭐랄까... 괜히 웃음이 나오더라.

아메리칸 항공정도면 그래도 세계 최대 항공사중 하나인데 기내 간식이라고 준 풍경은 참 단촐했다.

순간 '이거 무슨 고아원 간식 시간 같은 분위기 아닌가' 싶어서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30년 전 생각이 났다. 그때는 국내선이라도 따뜻한 식사가 나왔다.

작은 트레이에 빵, 샐러드, 메인 요리까지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승무원들도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였다.

올림픽 이후 한국 경제 올라가던 시절, 하늘을 나는 것 자체가 성공의 상징 같은 느낌도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항공은 서비스 산업이 아니라 철저한 운송 산업이 됐다.

효율, 비용 절감, 회전율. 이 세 가지가 모든 걸 결정한다.

메인 캐빈 기준으로 보면 4시간이든 6시간이든 프레첼이나 쿠키같은 과자가 기본이다.

나중에 알게된거지만 이젠 땅콩도 알레르기 위험으로 안준단다.

점점 유전적으로 열악해지는 미국인들이다. 그래서 추가 음식은 사 먹어야 한다.

델타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줄이고 비용 낮추고 대신 항공료는 싸게 유지한다.

실제로 애틀랜타-피닉스 왕복이 시기에 따라 $300~$450 수준이다. 30년 전 물가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싸다.

그러니까 구조를 보면 맞는 이야기다. 승객들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다들 노트북 열고, 이어폰 끼고, 목적지까지 '이동 모드'로 들어간다.

하늘 위에서도 각자 자기 세계다. 그날 옆자리 신사들도 프레첼 먹고 나서 바로 휴대폰 들여다보더라.

창밖으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달라진 건 사람 마음이다.

예전에는 비행 자체가 여행의 일부였다면, 지금은 그냥 이동 과정이다.

낭만은 줄었지만 대신 시간은 빨라졌고, 비용은 낮아졌고, 접근성은 좋아졌다.

감성보다 시스템, 분위기보다 효율. 프레첼 한 봉지가 미국 경제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애틀랜타에 착륙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낭만은 비행기가 주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라고.

다음엔 프레첼 대신 공항갈때 김밥이나 샌드위치라도 하나 사가지고 타야겠다. 그게 요즘 방식이라니까.

물론 물이나 쥬스같은 음료수는 TSA 검색에서 압수되니까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