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영 좀 한다는 30대 초반의 남자입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을 배워왔고, 한강 크로스 스위밍 챌린지도 성공했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있습니다.
물에 들어가면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씻겨 내려가는 그 기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그런 저에게 어느 날 문득, 아주 이상하면서도 끌리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해엄쳐서 대서양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이 의문을 본격적으로 파보기로 했습니다. 너무 로망이 있었거든요.
대서양은 평균 너비 약 4,830km, 가장 좁은 세네갈-브라질 사이 거리도 2,800km 이상입니다.
하루에 10km씩 수영한다고 해도 최소 285일 이상 걸리는 거리예요. 그것도 파도, 상어, 조류, 폭풍, 해파리, 식량, 체력 다 무시했을 때 말이죠.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진짜로 수영해서 대서양을 건넌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 태생의 장거리 수영가 Benoît Lecomte라는 인물인데요.
1998년,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Hyannis에서 출발해 프랑스 브르타뉴 해안의 퀴베론까지 약 3,700마일(약 5,950km)를 73일 동안 수영해서 건넜습니다.
하루 평균 6~8시간씩 수영했고, 그 외 시간은 요트에서 휴식.
"어? 그럼 논스톱은 아니네?"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매일 마지막으로 물에서 나온 지점에서 다시 시작했다는 것.
GPS와 지원 보트를 통해 위치를 추적하며 '정직한 수영'을 한 거죠.
이 도전은 아버지의 암 투병을 기리는 기부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그 의미와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히 경외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Lecomte의 도전은 놀라운 기록이었으나, 순전히 수영만으로 만들어 낸 거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치가 없습니다.
그의 기록은 '스테이지 수영' 방식(매일 물 밖에서 자고 다시 그 지점에서 재입수영)을 사용하였지만, 몇 km는 조류와 보트의 도움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부분이 Guinness 세계 기록 등의 공식 인증이 불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도전도 놀라운 수준이어서 수많은 해양학자, 환경단체, 수영인들이 그의 도전을 '전설'로 기억합니다.
자, 다시 저로 돌아와 봅니다.
30살, 건강한 체력. 하루 8km 수영은 거뜬하고 군 시절 바닷물 수영에 익숙합니다. 정신력도 나름 강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신 있어도 대서양은 바다입니다. 결국 체력뿐 아니라 지속적인 심리 컨트롤과 지원팀의 조직력이 필요합니다.
Lecomte도 혼자 한 게 아니었어요. 그는 40피트짜리 요트와 Shark POD라는 전자기파 상어 퇴치 장비, GPS 추적 시스템, 의료진까지 풀세팅한 상태로 도전했습니다.
Lecomte는 단지 수영만 한 게 아닙니다. 그는 수영을 통해 아버지를 기억했고, 암 극복과 해양 보호라는 큰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했습니다.
그의 도전은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의미'였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물속의 행진이었습니다.
그는 대서양 이후 2018년에는 태평양 횡단까지 시도했습니다.
일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8,000km를 수영하려 했지만, 중간에 태풍과 장비 손상으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도 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방사능, 해양 생태 변화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계에 기여했습니다.
"수영으로 대서양 건널 수 있어요?"
정답은 이겁니다. 이론상 가능은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한다.
수영 좀 한다고 대서양에 도전하는 건, 마치 농구 좀 한다고 NBA에서 트리플더블하겠다는 말만큼이나 격차가 크죠.
하지만 상상은 자유고, 그 상상이 삶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수영장 25m 레인을 60바퀴 돌면서, 나만의 대서양을 건넌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언젠간, 마음속 대서양 정도는 건너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