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기차에서 옆자리 젊은 직원이 휴대폰에 대고 한참을 타이핑하고 있었습니다. 슬쩍 보니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AI 챗봇이었습니다.
회사 일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화면에 뜬 문장은 요즘 마음이 좀 지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괜히 민망해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날 저녁에 마침 관련 조사 결과를 봤습니다. 미국 성인 인터넷 이용자의 27%가 AI와 감정적이거나 사회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입니다.
조사는 엘론대학교 디지털퓨처센터가 워싱턴포스트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올해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유고브를 통해 4,268명의 성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단순 검색이 아닙니다. 고민 상담, 인생 문제에 대한 조언, 연애 상황 연습, 외로울 때 말벗 삼기 같은 쓰임을 묶은 것입니다.
숫자를 보고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면 사무실 한 층에도 꽤 여럿이라는 얘기입니다.
연령 차이도 뚜렷했습니다. 50세 미만에서는 40% 가까이가 이렇게 AI를 쓰고 있어서, 그보다 윗세대보다 두 배 넘게 많았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AI를 쓰는 사람들 1,000명을 따로 추려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 결과가 더 흥미롭습니다.
이들 가운데 31%는 챗봇을 친구로 여긴다고 답했습니다. 15%는 친구라고 하기엔 관계가 더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39%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AI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속마음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셈입니다.
59%는 AI가 자기에게 필요한 지지를 준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38%는 덜 외롭기 위해 AI와 대화한다고 답했습니다.
사용 빈도와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AI를 매일 쓰는 사람 중에서는 66%가 이런 동반자 같은 용도로 쓰고 있었고, 일주일에 몇 번 쓰는 사람은 49%였습니다.
쓰임새도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건강과 생활 습관 조언이 가장 많았고, 돈 문제나 가족 문제까지 AI에게 묻는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들 좋게만 보는 건 아닙니다. 퓨리서치센터가 6월 말 3,488명에게 물은 조사에서는 분위기가 꽤 달랐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챗봇에 기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39%는 해가 된다고, 19%만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우울감이나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해가 된다는 쪽이 더 많았습니다.
의외였던 건 젊은 층의 반응입니다. 18세에서 29세 사이에서는 외로움에 챗봇을 쓰면 해가 된다는 응답이 49%로, 도움이 된다는 23%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세대가 가장 경계하기도 하는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아시아계 응답자는 인종별로 유일하게 긍정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인들도 여기에 포함되니 남 얘기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이해가 갑니다. 이민 생활에서 속 얘기를 편하게 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교회나 한인회에서 만나는 분들과는 체면이 걸려 있고, 회사 동료와는 언어와 문화의 벽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시차 때문에 전화 한 통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틈에 밤늦게라도 불평 없이 들어주는 상대가 있으면 끌리는 게 당연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으니까요. 같은 얘기를 세 번 해도 싫은 내색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보고 싶습니다. 들어주는 것과 곁에 있어주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AI는 맞장구를 잘 칩니다. 그런데 친구는 가끔 듣기 싫은 소리도 해줍니다. 그게 오래 가는 관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AI는 내가 말하지 않은 사정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입력한 만큼만 알고 거기에 맞춰 답할 뿐입니다.
개인정보 문제도 있습니다. 남에게 안 할 이야기를 입력한다는 건, 그 내용이 회사 서버 어딘가에 남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머릿속을 정리하는 도구로는 충분히 쓸 만하지만, 사람 사이의 대화를 대신하게 두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복잡한 서류나 일정 정리는 AI에게 맡깁니다. 편리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골프 치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라운딩 약속 핑계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속이 풀립니다.
혹시 요즘 AI에게만 털어놓고 있다면, 그 이야기 중 하나만 가까운 사람에게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반갑게 들어줄 겁니다.
그리고 정말 힘든 시기라면 챗봇이 아니라 전문 상담가를 찾는 게 맞습니다. 988 위기상담 전화는 24시간 열려 있습니다.
이번 조사를 이끈 연구진도 이것이 새로운 관계에 대한 첫 번째 관찰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숫자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그날 기차에서 내린 그 직원이 오늘은 동료와 점심이라도 같이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은 발전해도 결국 사람 곁에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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