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 보면,
현실과 예술이 묘하게 겹쳐지는 순간들이 있다.
출근길이나 퇴근길, 늘 지나치는 그 길목.
빛나는 금속 외벽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반사하는 바로 그곳.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Walt Disney Concert Hall).

나는 이 건물 앞을 거의 매일 지난다.
회사와 집 사이, 그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자
LA 필하모닉의 보금자리인 이곳을
수십 번, 수백 번 지나쳤지만
한 번도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언젠간 꼭 한 번 가보자.”
“이번 주말엔 표라도 한번 알아볼까?”
그런 말들을 몇 년째 되풀이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런 ‘언젠가’는 늘 다음 달로, 내년으로, 그리고 또 그다음 해로 밀려났다.

올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자꾸 좋은 걸 미루고 사는 걸까?”
좋은 음식, 좋은 사람, 좋은 경험…
마치 나중에 더 값질 때 쓰려는 귀한 그릇처럼,
내 삶의 즐거움들을 계속 진열장에만 올려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결심했다.
올해는 반드시 LA 필하모닉의 공연을 직접 보러 가자.
밖에서만 감탄했던 그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가보자고.

이 결심을 아내에게 말하니
“정말? 드디어?” 하며 눈이 반짝였다.
우리 둘 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생음악의 힘을 사랑하고,
무대의 떨림과 관객의 숨결이 만드는 그 현장감을 그리워해왔다.

디즈니 홀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올 시즌 LA 필하모닉 공연 일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생소한 작곡가들의 이름, 낯익은 클래식 곡들,
또 때때로 영화음악, 재즈, 팝 협연까지 다양하게 펼쳐지는 프로그램에
아내와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 있대!”
“오, 존 윌리엄스 음악하는 날도 있네!”
“이건 마감 전에 빨리 예매해야겠다!”

우리는 티켓 예약 캘린더를 따로 만들어
서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을 골라나갔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나오는 날을 조율하고,
공연 끝나고 저녁은 어디서 먹을지도 미리 정해뒀다.

그냥 콘서트 하나 보겠다는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 하나만으로
우리 부부의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실 디즈니 홀은 그냥 멋진 건축물이 아니다.
그 안에서는 수많은 예술이 매일 울려 퍼진다.
그걸 아는데도,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음악,
서로의 손을 다시 꼭 잡게 해주는 밤,
그리고 ‘이번엔 진짜 해보자’는 작은 결심들.

이제는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
올해 안으로, 아니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아내와 함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웅장한 음향 속에 나를 맡기고,
정장을 입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우리의 감정도 조금씩 흔들려 보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알맞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여전히 유연하고,
삶의 무게는 조금은 익숙해졌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느낄 감동이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미뤄둘 이유가 없다.

2025년, 올해는
내 인생 첫 디즈니 홀 공연 관람의 해다.
매일 지나치던 그 멋진 건축물 안에서
음악과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삶.
그게 바로 내가 꿈꾸던 LA 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