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지역 하우스에 살다 보면, 집 구조가 생활 패턴을 바꾸는 기능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워크인 클로젯같은 경우 한국에서 붙박이장만 쓰다가,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조용히 클로젯 문 열고 들어가면, 거기서 불 켜고 코트, 정장, 후드티, 신발, 캐리어까지 다 한 방에 해결돼요.

현관에서 코트 찾고, 방에서 양말 찾고, 서랍에서 벨트 찾고 이럴 필요가 없어요. 겨울철엔 코트만 줄줄이 걸어두고, 장마철엔 빨래 건조대 대신 옷걸이 잔뜩 걸어 말리기도 해요. 이게 좋으면서도, 점점 짐창고가 되면서 "오늘은 진짜 정리해야지..."만 열 번쯤 말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동부 특유의 베이스먼트는 추운 겨울날 윗층은 난방이 빵빵한데, 베이스먼트 내려가면 살짝 서늘하면서도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빨래할때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죠. 보통 세탁기, 건조기가 다 베이스먼트에 있어서 주말에 빨래 바구니 들고 삐걱대는 계단을 내려가야 해요. 가끔 거미 한 마리씩 벽타고 올라가는 거 보면 한국 지하실 생각도 나고요. 대신 계절 지난 옷, 이불, 캐리어, 김장김치통 같은 거 다 내려보내면 윗층이 확 넓어져요.

코리도어는 처음엔 "왜 이렇게 복도가 길지? 이거 다 heating 비용인데..." 이런 생각부터 들어요. 그런데 손님이 왔을 때 거실에서 떠들어도, 안쪽 방 문만 닫으면 소리가 좀 분리돼서, 각자 방에서 일하거나 공부할 수 있는 구조가 나와요.

밤에 화장실 가려고 코리도어 불만 살짝 켜고 슬리퍼 끌면서 지나갈 때, 보스톤 오래된 집 특유의 나무 바닥 삐걱 소리가 나면 "아, 진짜 미국집에 사는구나" 느낌이 오기도 해요.


팬트리(Pantry) 같은 경우 처음엔 주방 옆에 애매하게 문 하나 달려 있어서 "여긴 뭐 넣는 데지?" 싶었는데, 한번 장을 왕창 보고 와서 썩을까 걱정되는 마늘, 양파, 라면 박스, 햇반, Costco 사이즈 간식들을 팬트리에 싹 밀어 넣고 나면 진짜 신세계예요. 방문 열면 짠 하고 미니 마트가 열리는 느낌이 들죠 ㅋㅋ.

퇴근해서 저녁거리 챙길 생각에 팬트리 열어보고 대충 파스타 소스, 캔 옥수수, 참치 하나 집어 들면 메뉴가 바로 결정돼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마트 가기 전에 냉장고보다 팬트리부터 확인하게 돼요. "케첩, 핫소스, 시리얼, 간식 충분한가?" 이게 생활 동선의 일부가 되는 거죠.

개러지는 겨울에 진짜 위력을 발휘해요. 눈 온 다음날 아침에 밖에 세워둔 차는 유리창에 얼음 잔뜩, 문도 잘 안 열리고 시동도 버벅거리는데, 개러지에 넣어둔 차는 그냥 평소처럼 바로 나갈 수 있어요. 대신 현실은 차보다 박스, 공구, 자전거, 캠핑용품,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점점 차를 밀어내서, "원래 차 두대 들어가는 개러지인데 왜 이제는 한대 겨우 들어가지?"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을 하게 되죠.

다락방인 애틱은 평소엔 잘 안 올라가지만, 이사 올 때랑 크리스마스 전후에 존재감이 터져 나와요. 한국 같으면 베란다 창고에 넣었을 법한 캐리어, 크리스마스 트리, 써먹을지 애매한 빈 박스들을 전부 애틱에 올려두면 집이 갑자기 넓어져요. 단점은, 뭘 찾으려고 접이식 사다리 펴고 올라갔는데, 여름에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사우나 느낌,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에 숨이 턱 막힌다는 거죠.

그래도 한겨울 밤에 눈보라 치는 소리 들리는데, 따뜻한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있으면, 머릿속으로 팬트리, 베이스먼트, 워크인 클로젯, 개러지, 다락방까지 집 전체가 오밀조밀하게 잘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서라면 한 평, 두 평 아껴서 다른 걸 만들었을 공간들이, 여기서는 이름 하나씩 달고 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그 안에 내 생활 패턴이 조금씩 맞춰지는 걸 느끼면서 "아, 이제 나도 미국 사는거에 익숙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