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국에 비행기 타고 갈 때마다 특히 누가 소개팅이라도 해준다고 하면 마음이 좀 묘합니다.

저는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와서 지금까지 뉴욕에서만 16년을 살아온 서른네 살 건강한 한국 남자입니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이 도시에서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 감각이 한국보다는 뉴욕 쪽에 더 익숙해져 버렸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갈 때마다 여자 만날이 생기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요즘 서울의 외모 풍경이 제 눈에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강남성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지나친 성형수술의 결과로 부자연스럽거나 위화감이 드는 외모를 가지게 된 사람을 조롱하는 말로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 기억한 그 단어는 아직도 남아있는 선입견으로 남아있습니다. 솔직히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 그리고 개성있는 얼굴과 분위기를 보며 살아온 제 눈에는 지금 서울의 외모 지상주의가 꽤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까지 와 있습니다.

뉴욕 유니언 스퀘어나 소호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얼굴들이 있습니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도 있고, 곱슬머리도 있고, 코가 좀 투박한 사람, 턱이 각진 사람, 심지어 얼굴에 흉터가 있어도 그게 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 도시에서는 완벽한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얼굴을 얼마나 자신 있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가 곧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서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지하철 광고부터 길을 걷는 사람들까지, 마치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비슷한 얼굴들이 반복됩니다. 과하게 높인 콧날, 지나치게 큰 눈, 인위적으로 깎아낸 턱선. 예전에는 성형한 티 난다고 말하던 얼굴이, 이제는 관리 잘 받은 얼굴의 상징처럼 통하는 걸 볼 때마다 솔직히 좀 낯섭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조금만 남들과 달라도 불안해하고, 연예인 얼굴을 정답지처럼 삼아서 자기 얼굴을 고쳐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만의 분위기나 자아는 점점 사라지고, 비슷비슷한 껍데기만 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제가 기억하던 서울은 지금보다는 훨씬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외모마저 하나의 스펙처럼 관리해야 하는 감옥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물론 성형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선택할 수도 있죠. 다만 그 만족이 정말 자기 안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주변 시선과 사회의 압박에서 비롯된 건지,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가 같은 인형처럼 되려는 도시에서, 정작 그 사람만의 아우라와 분위기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뉴욕 친구들이 가끔 저한테 묻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왜 다들 그렇게 똑같이 예뻐?"
그 말 속에는 감탄보다는 의문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걸 저는 느낍니다.

서른네 살이 되니까 확실히 보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유행하는 얼굴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 사람만의 결에 있다는 겁니다. 성형으로 만든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유통기한이 짧지만,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눈빛과 표정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서울은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화려함 뒤에서 자연스러운 개성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음에 한국에 갈 때는 제각각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진짜 미인들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