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경제 이야기를 보면 양극화가 진행중이러서 그런지 일반 사람들의 지갑 사정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가 발표하는 베이지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 활동이 줄어든 지역이 점점 늘고 있고, 특히 저소득층 소비자들의 지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사람들은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바로 401K 같은 은퇴자금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퇴직연금 운용사 중 하나인 뱅가드 자료를 보면 최근 401K 중도 인출 비율이 6%까지 올라갔다.

코로나 이전에는 2%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변화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지 않기 위해서, 또는 의료비를 내기 위해서 은퇴 자금을 꺼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해해 보기 위해 60세 한인 김상철 씨의 상황을 이야기 해 보자.

김상철 씨는 미국에서 오래 일하며 401K 계좌에 약 30만 달러 정도를 모아 두었다.

아직 은퇴까지는 몇 년 정도 더 남았지만 최근 생활비가 크게 올라 고민이 많다.

집 모기지, 자동차 보험, 식료품 가격까지 거의 모든 비용이 올라 버렸다.

여기에 갑자기 가족 의료비가 생기면서 현금이 급하게 필요해졌다.

결국 김상철 씨는 고민 끝에 401K에서 5만 달러를 중도 인출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미국의 401K는 원래 은퇴 이후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59세 반 이전에 돈을 꺼내면 10% 페널티가 붙는다. 김상철 씨는 60세이기 때문에 이 10% 페널티는 피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안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소득세다.

401K는 세금을 나중에 내는 구조의 계좌다. 돈을 넣을 때는 세금 공제를 받지만, 꺼낼 때는 일반 소득처럼 세금을 내야 한다.

김상철 씨가 5만 달러를 인출하면 그 금액이 그대로 그 해의 소득으로 잡힌다. 만약 김상철 씨의 다른 소득이 7만 달러 정도였다면, 그 해 총 소득은 12만 달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세율 구간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생활비로 쓰려고 꺼낸 돈이 세금 부담까지 늘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또 하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제가 있다. 바로 미래의 복리 효과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김상철 씨의 5만 달러가 연평균 6% 정도로 계속 투자된다고 가정해 보자. 10년 후에는 약 9만 달러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꺼내 버리면 그 성장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은퇴 이후 사용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재정 전문가들은 가능하면 401K를 깨는 것을 마지막 선택으로 남겨 두라고 조언한다.

대신 몇 가지 다른 방법을 먼저 검토해 보라고 한다.

첫 번째는 401K loan이다. 일정 한도 내에서 자신의 401K에서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세금이나 페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고 나중에 다시 상환하면 된다. 물론 직장을 떠나면 바로 상환해야 하는 위험은 있다.

두 번째는 지출 구조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자동차 할부, 구독 서비스, 보험료 같은 고정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현금 흐름 개선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Roth conversion이나 부분 인출 전략을 세무 전문가와 상담하는 방법이다. 같은 5만 달러를 꺼내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인출하느냐에 따라 세금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요즘 경제 상황을 보면 401K 중도 인출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해는 된다. 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높아지면서 가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 자금은 말 그대로 인생 후반부를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김상철 씨처럼 잠깐의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퇴 자금을 사용하면 당장은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세금 부담과 미래 자산 감소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401K를 깨기 전에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지금 필요한 돈인가. 아니면 미래의 나에게서 빌려오는 돈인가.

이 질문 하나가 은퇴 후 삶의 여유를 크게 바꿔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