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시청(City Hall) 주변을 처음 걸어보면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도시 한복판인데 왜 이렇게 여유롭지?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죠. 롱비치나 코리아타운처럼 가게가 줄지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산타모니카처럼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도 아닙니다. 출근 시간에는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있지만 점심 지나면 사람들이 싹 빠져나가 버린 듯 텅 빈 느낌도 납니다. 왜 이런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이 철저히 '행정 중심지'라는 점입니다.

시청과 법원, 여러 공공기관 건물이 몰려 있어서 점심시간에는 조금 활기 있지만 업무가 끝나는 오후 4~5시만 되면 사람들 흐름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회사가 많지 않은 건 아닌데, IT나 엔터 기반 트렌디한 기업이 몰린 곳도 아니라서 퇴근 후 머물며 소비하는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공기관 특성상 건물 안에 직원들은 많아도 시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성격의 공간이 아니다 보니 거리에서 체감되는 인구 밀도는 훨씬 낮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다운타운 전체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 즉 안전과 홈리스 이슈도 무시 못 합니다. 시청 바로 근처는 상대적으로 관리가 되는 편이지만, 몇 블럭만 벗어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져 경계심이 생기는 구역도 존재합니다. 저녁이나 주말엔 직장인 유동이 끊기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줄고, 상업 시설이 들어오기도 부담스러워 공실이 많아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그래서 식당이나 카페도 업무일 점심시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주말엔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이 짧은 곳도 흔합니다. 결국 소비 수요가 지속되지 않으니 활기가 생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 시청 앞 광장은 이벤트가 있을 때만 붐벼서 일상적으로 북적이는 느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영화 촬영이나 집회, 시청 행사 같은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만 잠깐 살아나는 패턴이 반복되죠. 반면 샌타모니카나 할리우드는 관광객 유입이 꾸준하고, 코리아타운은 주거 밀도가 높아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동네라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럼 앞으로 시청 주변이 활기를 찾을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만약 오피스 일부가 주거용으로 재편되고, 근처에 소규모 카페·바·갤러리 같은 생활형 공간이 늘어나면 '퇴근하면 비는 도시'에서 '머물고 싶은 도시'로 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작은 변화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머물기 편한 동네가 되는 것, 안전과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 그리고 시민들이 굳이 찾고 싶어지는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한가함은 경제 침체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다음 변화를 위한 빈 공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광지처럼 붐비진 않지만, 숨 쉴 공간 있고 건물과 역사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한적함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 활력을 찾는다면, 지금의 고요함은 오히려 변화의 전 단계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