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산 지 벌써 4년 차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를 위해 이곳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두 문화 사이에서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요즘 특히 자주 떠오르는 말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그 단어, ‘노빠꾸’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웃으면서 “쟤는 완전 노빠꾸야ㅋㅋ”라고 하는 걸 듣고, 대충 느낌으로 “겁이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 말이 단순한 유행어나 농담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인 태도, 아니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빠꾸. 다시 말하면, 물러서지 않음. 직진. 돌진. 요즘 한국의 커뮤니티 글이나 유튜브 쇼츠를 보면, 싸움이 났을 때나, 무리한 주장을 펼칠 때, 혹은 사회적 예의를 무시하면서도 밀어붙일 때 “노빠꾸”라는 말을 자랑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무시하고, 사회 규범을 어기더라도 “그래도 난 직진했다”는 식의 자기 정당화가 담겨 있는 듯하다.

미국에선 그런 태도가 통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무례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바로 “rude” 라고 말하며 선을 긋는다.

물론 미국도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지만, 그건 기본적인 존중 위에서 이뤄지는 거지, 남을 무시하고 들이받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빠꾸. 직진. 후퇴 없음. 요즘 한국 커뮤니티 보면 이런 식의 태도가 유쾌함이나 멋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서 고함치는 사람, 규칙을 어겨도 “내가 뭘 어쨌는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 댓글엔 “와 진짜 레전드 노빠꾸네ㅋㅋ” 같은 반응이 달린다.

이런 게 재밌긴 한데, 사실 그 이면은 좀 씁쓸하다.

그런데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노빠꾸 정치인'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남이 뭐라든, 언론이 비판하든, 그에겐 후퇴가 없다. 그런 ‘나는 밀어붙인다’는 태도가 일부 미국인들에겐 ‘솔직하고 용감한 리더’로 보였고, 팬덤처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한국에서 무례한 행동을 해도 “노빠꾸라 멋있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처럼.

그런 트럼프가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던 분야 중 하나가 이민 정책이다. '무슬림 국가 여행 금지령(Muslim Ban)', 멕시코 국경 장벽, DACA 프로그램(서류 미비 청년 보호 제도) 폐지 시도 등,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유학생인 나도 영향을 느꼈다. 갑자기 비자 갱신이 까다로워지고, 입국 심사도 이전보다 훨씬 빡빡해졌다.

트럼프는 말 그대로 “미국은 미국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며 노골적인 배타주의를 드러냈고, 그 안에는 아시아인, 중남미계, 무슬림 이민자들을 향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야말로 이민자 입장에선 ‘노빠꾸 공포정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 스타일이 단지 정치 전략이 아니라,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선 일종의 미덕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구호 뒤엔, 타인과 타문화에 대한 ‘배려 없음’과 ‘후퇴 없음’이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한국의 노빠꾸 문화와 미국의 트럼프 스타일에서 공통으로 느낀 불편함이었다.

한국에선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참는 게 미덕이던 시대를 지나면서 이제는 “말 안 하면 손해”라는 식의 분위기가 많다. 미국에서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이 강해지면서, 트럼프 같은 지도자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문화는 다르지만, 노빠꾸는 세계 어디서나 피로한 사람들 마음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사회 전반에 퍼졌을 때, 갈등은 커지고 공존은 어려워진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결국 중요한 건, 자기 목소리를 내되 다른 사람도 함께 살 수 있게 만드는 질서와 배려의 균형 아닐까.

진짜 멋은,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용기에 있다는 걸—이민자로, 유학생으로,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점점 더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