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훌쩍 넘은 조니 뎁 주연 애니메이션 랭고를 얼마 전에 다시 봤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나오는 웬만한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재미있고, 훨씬 잘만든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개봉했을 때는 그냥 서부극 패러디 애니메이션 정도로 봤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빌린 정통 영화에 가깝다.

랭고가 특별한 이유는 캐릭터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영웅도 아니고, 처음부터 능력자도 아니다. 유리 상자 안에서 살아오다 우연히 사막에 떨어진 카멜레온이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남는 이야기다. 조니 뎁의 목소리는 과장되기보다는 불안하고, 허세가 가득하고, 어딘가 비틀려 있다. 보통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명확한 선과 악, 성장 공식과는 결이 다르다. 이 불편함이 랭고를 더 기억에 남게 만든다.

이 영화가 명작으로 남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관이다. 서부극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되, 물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중심에 둔다. 사막 마을 더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축소판 같다.

물을 쥔 자가 권력을 갖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조작한다. 애니메이션인데도 정치 이야기, 권력 이야기, 정체성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연출도 지금 봐도 놀랍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 특유의 실사 영화 같은 카메라 워크와 조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든다.

고어 버빈스키는 장르에 갇히지 않는 연출로 유명한 감독이다. 해적 영화부터 서부극, 애니메이션까지 전혀 다른 작품들을 만들면서도 공통적으로 세계관 구축과 비주얼 완성도가 뛰어나다. 랭고에서는 실사 영화 같은 카메라 감각과 어두운 유머를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옮겼다. 상업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캐릭터 디자인도 친근감은 1도 없는 좀 거북한 느낌이다. 아니 차라리 보기에 기괴한 쪽에 가깝다. 주름지고, 거칠고, 사막의 먼지가 묻어 있는 얼굴들. 이 지점이 랭고의 장점이자 한계였던 것 같다.

왜 후속작이 안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어쩌면 너무 명확하다. 랭고는 상업적으로 아주 대박을 친 프랜차이즈는 아니었다. 수익은 냈지만, 토이 스토리나 슈렉처럼 시리즈로 뽑아 먹을 구조는 아니었다. 캐릭터 상품화도 쉽지 않고, 아이들만을 겨냥한 영화도 아니다. 요즘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안전한 공식과는 거리가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위치 변화다. 랭고가 나왔을 당시 조니 뎁은 헐리우드에서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 배우였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논란과 소송을 거치며 대형 스튜디오가 선뜻 이름을 걸기 어려운 배우가 되어버렸다. 랭고는 조니 뎁의 목소리와 이미지에 너무 깊게 의존한 작품이라, 다른 성우로 바꿔 시리즈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랭고는 굳이 후속작이 필요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깔끔하게 끝난다. 주인공은 자신의 허세를 내려놓고, 마을은 진짜 질서를 되찾는다. 억지로 세계를 확장하거나 적을 더 키울 필요가 없다. 요즘처럼 모든 작품이 유니버스로 묶이고, 세계관을 늘려야만 살아남는 시대에 랭고는 너무 단독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더 아쉽다. 요즘 애니메이션 시장을 보면 기술은 발전했지만, 내용은 점점 안전해지고 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모두를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랭고처럼 기묘하고, 어둡고, 어른스러운 애니메이션은 점점 보기 힘들다.

10년도 넘은 영화인데 다시 봐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요즘 영화들보다 더 대담하다. 그래서 랭고는 속편이 없어서 더 명작으로 남는지도 모르겠다. 만들지 않아서 아쉬운 영화이자 굳이 또 만들지 않아도 되는 영화.

그 묘한 위치에 랭고는 지금도 그대로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