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왔던 내가 처음 몰았던 차는 혼다 어코드 중고차였다.
그 당시 나에겐 벤츠나 BMW보다 더 멋진 차였다.
혼다차답게 프리웨이에서 시원하게 잘달렸고, 그당시 국산차보다 고급인 오디오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도 좋았던것 같다.
하지만 그 차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센터 콘솔에 자리 잡고 있던 '동전통'이다.
거기엔 쿼터, 다임, 니켈, 페니까지 종류별로 정확히 끼워 넣을 수 있는 동전통이 있었고, 얼마 안 가서 그 유용함을 알게 됐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를 사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잔돈을 자연스럽게 거기 끼워두었다.
셀프 세차장에서 고압 세척기 돌릴 때도, 쿼터 네 개 딱 꺼내 넣으면 정확히 2분이 돌아갔다.
심지어 길거리 주차 미터기에도 필요한 동전들이었고, 동전이 있느냐 없느냐가 주차를 편하게 하느냐 마느냐 하던 시절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오른손으로 뻗으면 딱 닿는 위치에 있었던 그 동전통은 편리함 그자체였다고나 할까.
당시만 해도 카드결제는 큰 금액에나 쓰는 거였고, 커피 한 잔, 햄버거 하나, 세차 한 번, 심지어 자판기에서 콜라 뽑는 것도 다 동전이었다.
그래서 늘 잔돈이 필요했고, 지갑 속에는 늘 1불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동전통은 사라졌다. 요즘 나오는 차에는 센터콘솔에 USB 포트는 있어도 동전수납 기능은 없어졌다.
애플페이, 구글페이, 삼성페이가 있고, 신용카드는 그냥 가져다 대면 결제 끝.
세차장도 대부분 카드 리더가 설치되어 있고, 커피숍에서는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픽업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지갑 속에 1불짜리 지폐는 커녕, 동전 한 닢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고속도로 입구 쪽 신호 대기 중에, 구걸하는 한 남자가 종이판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도와주려다 문득 깨달았다. 지갑에도, 차 안에도, 1불짜리 지폐 하나, 쿼터같은 동전하나 없다.
그 순간 참 어색한 기분이 들더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찰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현실.
예전 같았으면 센터콘솔에서 쿼터 네다섯 개 쥐어 줬을 텐데, 지금은 어색하게 눈길 돌리고 지나갈수밖에 없었다.
내 차 안 콘솔을 열어보니 주차권 몇 장, 오래된 영수증, USB 충전 케이블이 꼬여 있었지만, 그 옛날 동전통은 없다.
그리고 문득, 그 작은 통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뭔가 따뜻했던 시대 하나가 같이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지금이 더 편리하긴 하다. 지갑 안 꺼내도 커피도 사고, 세차도 하고, 주차도 앱으로 하고.
하지만 뭔가... 손에 쥐고 있었던 작고 무거운 실물의 감각, 그게 그립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아마 쿼터나 페니를 손에 쥐어보고 "이거 어디다 써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현찰없는 지갑과 스마트폰 하나 들고 집을 나서지만, 가끔은 그 동전통이 있던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