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알람을 끕니다. 동시에, 메시지 확인. 이메일. 오늘 일정. 그리고 아직 커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머릿속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옵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40대 중반의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어 살고, 일정표를 붙잡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삶. 마치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되는 달리기 선수처럼요. 그런데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할까? 그게 정말 '사는' 걸까?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시간을 단순한 숫자나 시계의 바늘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현대인의 삶에서는 이 시간이 주체로서의 나를 압도해버렸습니다.
특히 40대에 접어든 우리 세대는 몸도 마음도 전성기를 지나 어느덧 삶의 구조 속에 깊숙이 들어가 버린 상태입니다. 일, 가족, 사회적 책임... 더 이상 '자기 시간'이 존재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는 무언가에 쫓기듯 지나갑니다. 마치 시간을 소유하고 소비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요.
우리는 자주 말합니다. "시간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시간을 자기 뜻대로 쓸 수 없게 된 것일까요?
전문직에 종사하다 보면 늘 무언가를 계획해야 합니다. 프레젠테이션, 회의, 미팅, 자료 정리, 아이 돌봄, 주말 약속. 우리 인생은 '스케줄'이라는 구조 안에서만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구조 속에 있는 동안 우리는 점점 '지금 여기'를 놓치게 되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즉, 시계가 알려주는 정량적 시간. 또 하나는 '뒤레(Durée)'—우리 내면이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크로노스에 묶여 살아갑니다. 몇 시에 어디를 가야 하고, 몇 분 안에 무엇을 끝내야 하며, 이 일을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이런 수치화된 시간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우리가 느끼는 시간, 나만의 속도는 점점 무시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결국,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죠.
바쁘다는 것의 허상
"요즘 어때요?"라는 질문에 가장 흔하게 듣는 대답은 "바빠요."입니다. 마치 바쁘다는 것이 능력의 증명인 것처럼, 또는 시간을 꽉 채워 쓰는 삶이야말로 생산적인 삶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건 때로는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일도 많아졌고,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들에 나를 맡기다 보면, 정작 내가 진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도망가고, 나는 그 뒤를 헉헉대며 쫓아가게 됩니다.
멈추는 용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법을 잊은 우리는 멈추는 법도, 쉬는 법도 잊고 살아갑니다. 특히 40대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안 될 것 같고, 잠시 멈췄다가는 다 잃어버릴 것 같고, '쓸모없어진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렵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진짜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천천히 일어납니다. 책을 읽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말없이 시간을 보내고, 걷는 것. 그런 것들이 결국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룹니다.
시간에 쫓기며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인생이라는 영화는 조용히 클로징 크레딧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의 철학
우리는 시간을 관리하려고 합니다. '시간관리 앱', '생산성 툴', '투두 리스트'...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시간의 철학적인 성찰 아닐까요?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가?
이 시간이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인가?
그리고, 내가 지금 사는 방식은 나에게 의미 있는가?
그런 질문 앞에 솔직해질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입니다. 돈도, 재능도, 기회도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은 같습니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0대라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시간과의 관계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너무 앞서가려 하지도, 너무 뒤처지려 하지도 말고, 조금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
그게 바로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의 시작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