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개스램프 디스트릭트 갔을 때 든 생각은 "아... 여긴 관광객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동네구나."

낮에는 좀 밍숭맹숭해서 그냥 회색 도심 같다가, 해만 지면 갑자기 네온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레스토랑에서 음악이 새어 나오며 동네가 반쯤 홀리는 모드로 변신한다. 낮에는 뒹굴고 놀다가 밤 되면 화장 싹 하고 외출 준비하는 도시 느낌?

길 이름이 왜 Gaslamp냐면 옛날엔 진짜 가스등이 켜졌던 동네라는데, 지금은 LED, 스피커, 스트로브 라이트까지 달고 EDM을 틀어대고 있으니 정신이 좀 없게된다. 벽돌 건물 안은 최신 클럽처럼 돌리고 있고, 거리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반쯤 전시물 취급된다.

깨끗한 해변과 군사 도시 이미지의 샌디에이고를 생각했다면 여기서 바로 이미지가 확 바뀐다. 이성을 잃고 카드 긁고 나오기 좋은 공간이다. 맥주 하나 주문하려고 바에 앉으면 바텐더는 친절하게도 20종류의 IPA를 줄줄 읊기 시작한다. 난 그저 "라거 하나"라 했을 뿐인데, IPA의 홉 특성과 향미까지 강의가 작동한다.

그래, 여기선 물 마시듯 맥주를 마시는 문화겠지. 바텐더 따라갔다가 처음보는 이름의 IPA를 마셨는데 한 잔에 기분이 확 올라간다. 그 순간부터 개스램프는 점점 더 예뻐 보인다.

그래도 음식은 확실히 잘한다. 멕시칸부터 스테이크, 파스타, 시푸드까지 다 있고 타코는 거의 실패 없는 메뉴다. 근데 문제는 한 곳에 오래 못 앉아있게 만들어놨다는 것.

옆 가게 음악 소리 들리면 또 궁금해지고, 코너 돌면 또 하나의 바가 "여기 와봐라" 하고 손짓한다. 마치 동네 전체가 소비의 함정으로 설계된 느낌이다.

밤이 깊으면 살짝 술 냄새, 웃음소리, 술 취한 무리, 갑자기 길에서 춤추는 사람... 그리고 '파티의 끝은 길거리'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젊은이들까지. 솔직히 부산 밤거리, 라스베가스 분위기를 아주 적당히 섞은 느낌이다. 위험하다기보단 소란스럽고 정신없다. 그래도 혼자면 굳이 골목 깊숙이 안 들어가는 게 좋다.

웃긴 건 다음 날 아침이다. 전날의 열기는 사라지고 그대로 멀쩡한 벽돌 건물 아래서 카페 직원이 테이블 닦고 커피 향 퍼지고,  호텔에서 나온 사람들은 멀쩡하게 길을 걷는다. 밤에 봤던 광란의 도시가 맞나 싶다. 그래서인지 낮의 개스램프는 약간의 숙취 냄새와 함께 전날의 흑역사를 모르는 척하는 도시처럼 보인다.

내 생각에 개스램프 디스트릭트는 "술 마시러 가는 곳"이라 단순화하기엔 아깝고, "문화가 있는 거리"라 하기엔 너무 시끄럽다. 돈 쓰고 기분 업되고 뭔가 충동적으로 결정하기 좋은 곳 그게 이 동네의 본체다.

계획 없이 들어갔다가 지갑 얇아지고 기분만 좋아져 나오는 느낌?

그래도 LA와 또 다른 이곳 분위기를 느꼈다면 여행은 이미 성공이다. 돈도 조금 날아갔겠지만, 술먹으면서 찍은 사진 보면 기분은 확실히 살아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