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할아버지 댁 안방 한쪽, 짙은 나무 색상의 낮은 장식장처럼 생긴 기계.

뚜껑을 열면 안에서 팔이 달린 원판 턴테이블이 나왔고, 그 옆엔 라디오 다이얼이 함께 달려 있었던 그것.

우리는 그걸 '전축'이라고 불렀다.

1990년대 초반,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무렵에 주말마다 할아버지 집에 갔다.

할아버지는 과묵하시고 온화하신 분이셨지만, 전축 앞에서는 이상하게 표정이 달라졌다.

장식장 문을 열고 레코드판을 고르는 손길, 먼지를 털고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리는 자세, 그리고 바늘을 올릴 때의 정적.

찰칵, 바늘이 판에 닿고, 스르르… 음악이 흐르던 그 순간의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클래식의 선율이 집 안을 조용히 채우던 그 시간은 어린 나에게도 어딘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댁에 있던 전축은 바로 ‘태광 에로이카’였다.

그 시절 가전의 자존심 같은 존재.

짙은 월넛색의 원목 마감에 금속 다이얼과 네모난 볼륨 버튼,

그리고 무겁고 반짝이던 뚜껑을 열면, 그 안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라는 단어가 느껴지던 그 전축.

지금 보면 다소 투박하고 커다란 가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때는 여유 있는 가정, 품위 있는 삶의 상징으로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다.

한국에서 90년대 초까지, 전축은 단순한 음악 기기가 아니었다.

결혼할 때는 혼수로 넣는 품목이었고, 거실의 중심이었으며, 손님이 오면 클래식이나 팝을 틀어 대접하던 하이엔드 문화 아이템이었다.

태광, 금성, 삼성, 대우 등 국내 가전회사들은 너도나도 원목 전축을 출시했고, 그 중에서 ‘태광 에로이카’는 고급형으로 평가받았다.

카세트 테이프와 LP를 모두 재생할 수 있는 ‘콤비형 전축’은 당시 기술의 결정체였고, 그 뚜껑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축은 조금씩 흑색가전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TV, 비디오, 오디오, 심지어 스피커까지 검은색 일체형으로 묶이면서, 집안 중심의 우아한 나무 장식장 형태는 점점 사라지고, 모노톤의 기능 중심 기계들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

그 흔했던 전축은 어느새 ‘그 시절 있었던 물건’으로 남게 되었고, LP판은 창고 깊숙이 밀려났으며, 전축 뚜껑을 여는 일도 점점 잊혀갔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전축은 본격적으로 사라졌다.

MP3, CD, USB, 그리고 블루투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천 곡이 자동 재생되고, 무선 스피커로 전송되며, 작은 기기 하나에 수년치 음악이 담기는 시대.

물론 그건 편리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음악을 듣는 과정’이 빠져버렸다.

전축은 단지 음악을 틀기 위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건 ‘듣는 시간’을 준비하고 존중하는 과정이 있었다.

레코드판을 꺼내어 턴테이블에 놓고, 바늘을 조심스레 올리는 행동은 음악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맞이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음악은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채우는 하나의 존재가 되곤 했다.

이제 그 전축들은 플리마켓에서, 빈티지숍 구석에서, 혹은 폐가구 처리장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하지만 내게 전축은 단지 오래된 기계가 아니다.

그건 어린 시절의 정서이고, 클래식이 흐르던 주말 오후의 햇살이고, 할아버지의 미소이며, 우리 집안의 품격이 고요히 울리던 작은 무대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음악이 손 안에 있지만, 나는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