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엘에이 한인타운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온 지는 벌써 30년이 넘었고 여러 직장들을 전전하다가 봉제공장 서플라이회사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적도 드문것같네요. 특히 트럼프 대통령 재당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작년말부터 경기흐름이 둔해지고, 사장님도 힘들어하고 요즘 회사 안팎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고, 63세 넘어서 은퇴를 하자니 아직 준비가 안 된 느낌이고, 이런저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 상황입니다.
나는 아내와 둘이 삽니다. 딸은 뉴욕에서 잘 살고 있고. 딸은 어릴때부터 영특해서 공부를 잘했고 지금은 치과의사로 일하면서 좋은 남편 만나 뉴욕으로 결혼해 나갔는데, 처음엔 기뻐하다가 막상 아이가 떠나고 나니까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예전엔 퇴근하고 들어오면 항상 딸 목소리가 들렸는데, 요즘은 거실이 휑하다는 느낌뿐.
아내도 마찬가지로 딸이 없어진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집안일만 반복하다가 어느 날엔 멍하니 앉아있는듯. 같이 TV를 봐도 말이 줄어들고, 식사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다. 나름대로 우리 부부는 그런 걸 'empty nest syndrome'이라고 부르며 웃어 넘기려 했지만,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성당에 다시 나가보자고 했습니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뜸했었는데, 그냥 바람도 쐴 겸 따라가 보기로 했고 그렇게 다시 발을 들인 신앙생활.
그게 이렇게 내 마음을 다독여줄 줄은 몰랐습니다.
한인교회는 단순히 종교 활동을 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엔 나처럼 외롭고 불안한 중년 아저씨들이 있었습니다. 각자 사업을 접은 분도 있고, 가족과의 거리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도 있었고, 건강 문제로 고민 중인 분도 있었습니다. 말은 안 해도 서로 통하는 게 있는분위기....
미사참례 후 나누는 커피 한 잔, 성경 공부하면서 오가는 대화, 그리고 찬양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이민 사회에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교회 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민자의 삶이란 게 늘 안정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언어, 문화, 경제적 불확실성,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런 것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팍 터지는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인성당을 비롯한 한인 교회는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곳인거죠.
누가 먼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옆에 앉아 기도해주는 사람들.
주일마다 얼굴 보면서 "잘 지내시죠?" 하고 묻는 그 짧은 인사 속에 얼마나 큰 위로가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성당 그룹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젊은 부부들과도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우리 젊은 시절도 떠올리곤 하곤 합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 단순히 돈 버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구나.
마음이 지치고 흔들릴 때, 다시 붙잡아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건 성경과 공동체인 교회였고, 믿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언어로 위로받을 수 있는 '한인교회'라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요즘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요즘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우신 분이 있다면, 가까운 한인성당이나 한인교회를 한번 찾아가보시라.
믿음이 없더라도, 사람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국 땅에서 혼자 아닌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