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룩클린 다리 뒤로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보이던 1980년대와 90년대, 지금처럼 반짝이는 뉴욕이 아니라 조금은 거칠고 숨 가쁜 도시 한복판에서 한국 사람들은 정말 몸으로 때우며 열심히 살았었다.
1980년대만 해도 요즘같은 한인타운이 자리 잡기 전이라 많은 이들이 퀸즈나 브루클린에 방 하나 얻어 살면서 새벽같이 일어나 다리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갔고 Brooklyn Bridge를 건너며 보던 Manhattan의 빌딩 숲은 미래를 향한 꿈의 멋진 배경과 동시에 이민생활의 압박이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의 가장 흔한 출발점이 델리였다, 새벽 배송받은 우유와 신문을 진열하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여는 델리 카운터 뒤에는 늘 한국 사람이 서 있었고 계산대 옆에는 가족사진 하나 그리고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같은 성경구절 하나쯤 붙어 있었다.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서서 일하는 게 기본이었고 일요일 빼고는 공휴일도 없이 쉬는 날은 거의 없었지만 그 델리에서 번 돈으로 아이 학비를 내고 다음 단계로 옮길 발판을 만들었다.
조금 자리가 잡히면 옷가게로 갔다, 소호나 미드타운 변두리의 작은 의류 매장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팔고 밤에는 재고 정리를 하며 다음 시즌을 고민했다.
패션 악세서리와 잡화점도 한국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있었는데 헤어핀 벨트 스카프 같은 작은 물건을 많이 팔아 회전율로 승부했고 현금 흐름을 빠르게 만들었다, 그 시절엔 카드 수수료도 부담이어서 현금 장사가 중요했고 도난과 강도 위험 때문에 가게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늘 긴장을 놓지 못했다.
그래도 서로 어느 도매상이 가격이 좋다더라 어느 거리 단속이 심하다더라 같은 말들이 교회나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오갔다,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며 다리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 불빛을 바라보면 피곤함과 함께 이상한 희망이 섞여 올라왔다.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라는 믿음, 그렇게 델리에서 옷가게에서 잡화점에서 하루하루를 쌓아 올린 사람들이 자녀 세대에 이르러 전문직으로 길을 열었고, 그 과정의 출발점에는 늘 다리 건너의 도시와 그 아래에서 묵묵히 계산대를 지키던 손들이 있었다.
지금은 2세 3세들의 화려한 성공담이 넘치지만 그때는 이런 생활의 결이 80년대 90년대 뉴욕에서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진짜 모습이었고, 브룩클린 다리 뒤로 보이던 맨해튼 풍경은 그 고단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배경 같은 존재였다.
이젠 세월이 흘러 그당시 고생하던 많은분들이 7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는 세상이 되었다. 그중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분들도 많아졌고... 나는 오늘도 브룩클린 다리를 볼때마다 뉴욕 곳곳에서 고생하던 한인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영화 첨밀밀의 재회 장면같은 빛바랜 과거를 회상하고는 한다.


하와이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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