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또 피곤해?”
퇴근 후, 카우치에 바로 드러누운 나를 보고
이제는 키가 제법 커진 12살먹은 큰 아들이 물었다.
순간,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가 떨어진 듯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피곤할까.
그리고 이 피곤함은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
나는 롱비치에 있는 한 물류회사에서 창고 매니저로 일한다.
직원 출근 전에 창고 문을 열어야 하기에
아침 5시 반이면 이미 운전대에 올라 있다.
새벽부터 대형트럭들이 몰려가는 710번 프리웨이를 달릴 때마다
몸은 출근하지만, 마음은 아직 이불 속에 남아 있다.
도착하자마자 트럭 스케줄 확인, 인력 배치,
입고·출고 확인에 쏟아지는 전화까지…
하루의 절반이 3시간 안에 다 지나가버린다.
매니저라고 하면 사무실에 앉아 커피나 마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포크리프트 앞에서 물건 떨어진 팔레트를 다시 쌓고,
안 들어오는 계약직 알바 대신 바코드 찍고,
직원들 불만 들어주고, 드라이버들 짜증 받아주는
사람과 시스템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하는 직책이다.
문제는, 이 일이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는 거다.
물류가 밀리면 고객사부터 본사까지 전화가 쏟아지고,
하나 틀어지면 내가 전부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집에 와서도 끝나지 않는 긴장감
오후 5시, 겨우 퇴근하면
아이들이 달려와 “아빠 왔다!”고 반긴다.
그 짧은 순간이 내 하루의 보상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식사 중간에 울리는 이메일 알림음,
주간 물량 보고서 마감 일정,
아내와는 애들 재우다 지쳐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눈다.
가끔은 내 하루가
회사 → 교통체증 → 집안일 → 피곤 → 잠
이 다섯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
이 피곤함이 단순히 일 때문만은 아니다.
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계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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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관세가 또 올랐다는데 우리 창고도 영향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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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장난감은 다음 달에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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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년에 구조조정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몸은 하루 일과로 피곤하지만, 마음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친다.
40대에 가장으로 산다는 건,
하루하루 ‘일’을 넘기는 게 아니라 ‘전선’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왜냐고?
내가 버티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흔들릴까 봐.
내가 웃지 않으면, 아이들도 웃음을 잃을까 봐.
그래서 내 피곤함은 당연한 거라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밤 늦게, 베란다에서 맥주 한 캔을 들고
롱비치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아빠는 왜 항상 피곤해?”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빠는 매일 전쟁터를 다녀와.
그리고 그건 아빠가 가장 자랑스러운 이유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오늘도 늦게 퇴근해서 조용히 신발을 벗고 있다면,
당신도 대단한 하루를 살아낸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