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살면서 중서부 지역 출장이 자주있다보니 겨울만 되면 항상 걱정되는 것이 비행기 딜레이나 캔슬 메세지이다.

Windy city 답게 눈보라 내린다 싶으면 오헤어 공항은 그대로 멈춰 서게된다. "아 오늘 눈 좀 오네" 정도인데,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재난 영화가 따로없다. 뉴스에서는 "항공편 대규모 지연"이라고 말하지만, 그 한 줄 안에는 수천, 수만 명의 인생이 동시에 꼬여 버리는 사연들이 들어 있다.

오헤어는 그냥 공항이 아니라 미국 항공망의 심장이다. 유나이티드랑 아메리칸 항공 본진이고, 하루에도 수천 편 비행기가 여기서 갈라져 나간다. 그런데 하늘에서 눈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그 거대한 시스템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무너진다. 진짜 활주로가 많아서 좋은 공항일 것 같지만, 오히려 너무 커서 한 군데만 막혀도 도미노처럼 전체가 엉킨다.

눈 오는 날 아침 앱으로 공항 상황 확인해 정시 출발 초록색 표시가 거의 안 보인다. 전부 주황색 딜레이. 그 다음은 빨간색 캔슬. 그걸 보고도 일단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게 더 문제다. 고속도로는 이미 빙판 위 주차장이고 터미널 앞에 도착하면 분위기가 장례식장 같다.

공항 안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환승인데 캔슬되서 발 묶인 사람들, 마중 나왔다가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 젊은 여자들은 울고 있는것도 여러번 보았다.

사람들 태도도 각양각색이다. 직원 붙잡고 거의 협상하듯 얘기하는 사람들. "오늘 꼭 가야 한다" "장례식이다" "결혼식이다" "아이 혼자 있다" 사연이 넘쳐난다. 직원들도 이미 표정이 반쯤 포기 상태다.

문제는 제설이 아니다. 제설은 밤새 한다. 문제는 디아이싱이다. 비행기 한 대 한 대 날개에 얼음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출발 못 한다. 그래서 한 대 디아이싱 하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고, 그 사이 뒤에 줄 선 비행기들은 전부 묶인다. 그 한 줄이 결국 전국 항공편을 멈추게 한다.

시카고에서 막히면 뉴욕, 덴버, 댈러스, 애틀랜타까지 다 영향 받는다. 오헤어 하나 멈추면 미국 하늘이 같이 멈춘다.

몇 년 전 겨울, 급하게 LA 가야 해서 공항 갔다가 제대로 걸린 적이 있다. 처음엔 2시간 딜레이. 그다음 4시간. 오후쯤 되니 조용히 캔슬로 바뀐다. 대체편 물어보니 이틀 뒤. 그날 오헤어는 공항이 아니라 임시 난민 캠프였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시카고 사람들은 겨울 여행에 각성한다. 눈 예보 뜨면 일정 미루고 출장 많은 사람들은 겨울엔 무조건 피한다. 그래도 시카고 눈은 예고 없이 온다. 기상 앱 믿었다가 인생 일정 망가지는 건 기본이다.

오헤어는 세계 최고 수준 공항이다. 시설, 인력, 시스템 다 최고다. 그런데 자연 앞에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눈 몇 번에 미 전역 항공망이 흔들린다. 그래서 겨울에 오헤어 비행기 예약할 때마다 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그날만큼은 눈 좀 쉬어 달라고. 시카고에 오래 살수록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 매년 체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