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조용한 지역에 산다는 건 치열하게 돌아가는 도시 리듬에서 한 발 비켜서 숨 좀 고르는 느낌이다.

아침에 눈 뜨면 들리는 건 자동차 경적이나 사이렌 소리가 아니라 새소리 정도라서 하루 시작부터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

샌프란시스코라고 하면 늘 바쁘고 비싼 도시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막상 조금만 언덕을 타고 올라가거나 시내에서 벗어나 보면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가 많다.

Noe Valley 나 Outer Richmond 쪽처럼 주택가가 잘 정돈된 지역에 가면 주말 아침엔 개 산책시키는 사람들 몇만 보이고, 카페 앞에서 신문 넘기며 여유 부리는 분위기가 꽤 낭만적이다.

바다 냄새 섞인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오래된 빅토리아풍 집들이 늘어선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여기가 그 소란스러운 샌프란 맞나?" 싶은 순간이 온다.

관광객이 몰리는 피셔맨스 워프나 유니언 스퀘어와 달리 이런 동네는 해 질 녘이 아름답다.

붉은 지붕 위로 안개가 천천히 내려앉고, 길냥이 한 마리 지나가면 그냥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된다.

이동네에 살다보면 사람 간 거리도 널널하다 보니 굳이 서로에게 신경 곤두세울 일도 없어서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스트레스가 줄면 당연히 정신도 편안해지는데 소음 공해가 사라지니 집중력도 좋아지고 잠도 더 깊게 오더라.

공원에 슬슬 나가서 산책만 해도 괜히 살짝 힐링되는 기분, 이게 바로 조용한 동네의 힘이다.

남들 눈치 보며 꾸미고 살아야 한다는 압박도 적어서 머리 정리하기 좋은 환경, 취미 하나 붙잡고 오랫동안 몰입하기도 좋다.

물론 가끔은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문화생활 하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하고 동네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다 보니 프라이버시는 도시보다 덜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번잡할수록 조용한 공간의 가치는 더 크게 다가온다.

직장 스트레스에 치이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지고, 커피 한 잔 들고 햇살 맞으며 앉아 있으면 '아 이게 사는 거지' 싶은 순간이 온다.

정신이 복잡할수록 사람은 조용한 곳을 찾는다는데, 정작 그곳에 살기 시작하면 매일이 힐링코스다.

결국 도시가 주는 자극과 편리함 대신 마음의 여유와 안정감을 선택하는 셈이니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득이 크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하루에 한 번쯤은 잡념 없이 멍 때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값진지 살아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