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한식 퓨전 바베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요리학교를 다녔고, 미국 온 지는 이제 20년이 넘었다. 처음엔 라스베가스 한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 "내 이름 걸고 식당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아틀란타로 이전에서 시작한 게 지금 이 가게다.
한식은 기본, 거기에 내 스타일을 좀 더한 '퓨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 땅에서 장사하려면 무조건 한국식만 고집해선 어렵다는 걸, 몸으로 겪으면서 배웠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요즘 한식 열풍이 진짜 심상치 않다는 거다. BTS부터 K-드라마,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김치찌개나 불고기 나오는 장면 한 번 뜨면, 다음날 꼭 미국 손님 몇 명은 그걸 찾아온다. "Do you have that soup with red broth?" 이러면서.
그런데 나는 그걸 그대로 내놓진 않는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구워서 그냥 김치랑만 주면 반응이 50점이라면, 거기 버터 한 스푼을 살짝 녹여주면 갑자기 85점으로 올라간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다.
버터
한식에는 원래 버터가 없다. 들기름, 참기름, 간장, 된장 이런 게 전통적인 풍미를 만들어주는 재료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장사하다 보니까 느꼈다. 버터 하나만 넣어도 미국인들의 반응이 확 달라진다는 걸.
내가 개발한 메뉴 중에 '버터된장삼겹살'이라는 게 있다. 처음엔 그냥 장난처럼 만들어봤다. 삼겹살을 간장+된장 양념에 재우고, 구울 때 마지막에 버터를 살짝 올려서 마무리했는데, 이게 미국인들 입장에선 완전 'WOW'였다.
"이건 BBQ인데, 뭔가 다른데, 깊은 맛이 있다"는 평이 계속 나왔다. 처음엔 우연인가 싶었는데, 반복되니까 확신이 들더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더 대놓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김치볶음밥에도 버터 한 조각. 된장찌개에 마무리로 버터 몇 방울. 전에는 오일없이 살짝 구웠던 불고기도 버터에 한번 살짝 코팅해보니까 육즙도 잘 잡히고 풍미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물론 이런 시도는 한국에선 욕먹을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된장이냐", "한식 다 망친다"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내 가게에 오는 손님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이 사람들이 입맛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치찌개, 청국장, 오징어볶음 같은 강한 향을 처음 접하면 힘들어한다. 그런데 거기에 버터나 크림, 치즈 같은 미국식 재료를 살짝만 섞어주면, 입에 익숙한 맛이 돌면서도 새로운 느낌이 나는 거다.
이게 바로 퓨전이다. 기존 한식에 내가 가진 감각, 미국 현지 입맛을 결합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나는 그걸 요즘 매일 실험한다.
가끔은 손님들이 레시피를 물어보기도 한다. "이거 뭐 넣은 거야?"라고. 나는 그냥 웃으면서 대답한다. "버터요." 그러면 의외로 다들 납득한다. 한국 음식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잘 몰랐다고 하더라.
요즘 장사가 잘된다. 특히 저녁 시간대엔 예약 안 하면 자리 잡기 힘들 정도다. 손님들 대부분이 미국인인데, 어떤 분은 한 달에 네 번씩 오신다. 그럴 때마다 "너무 고마워요. 이 음식 덕분에 한국음식 좋아하게 됐어요"라고 말해주면, 그때 느낀다.
아, 내가 잘 하고 있구나.
요리라는 게 결국 사람 입에 맞아야 한다. 고집만 가지고는 절대 오래 못 간다. 나는 한식의 뿌리를 지키되, 미국 땅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 열쇠 중 하나가 바로 이 '버터'였다.
앞으로도 계속 실험할 거다. 그리고 언젠가 이 조그마한 가게가 아틀란타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통하는 맛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매일 아침, 버터 한 조각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