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다운타운 사람들은 패션 디스트릭트를 “자바시장(자바상가)”이라고 부릅니다.
영어 Jobber Market(옷감을 소량 떼다 파는 jobber들의 거리)이 한국 이민자들 입에 ‘자바’로 굳어버린 덕이죠.
오늘은 이 골목의 태생부터, 한국계 상인들이 주도권을 잡은 전성기, 그리고 DTLA 2040 계획 아래 바뀌어 갈 내일의 풍경까지 한눈에 정리해 볼게요.
“가먼트 디스트릭트” 시절
1920 년대 쿠퍼 빌딩과 패션센터 빌딩이 들어서며 9번가와 로스앤젤레스 스트리트 일대에 의류 창고·쇼룸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1972년 LA 타임스가 “2,000개 제조사가 모여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가먼트 디스트릭트’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빠른 회전율이 생명인 의류 업계 특성상, 원단을 소량 떼어다 바로 옷으로 만드는 jobber 문화가 자연스레 뿌리내렸죠.
한국 이민자와 ‘자바’의 탄생
1970년대 후반, 중남미를 거쳐 LA로 건너온 한국계 상인들은 유대계가 주도하던 이 시장에서 빈 틈을 파고듭니다. 값싼 원단을 땡겨 와 트렌드를 반영한 샘플을 24시간 만에 뽑아내는 ‘초스피드 생산’으로 바이어들을 사로잡았고, 이때 jobber market이 한국어 발음으로 ‘자바’라 불리기 시작했어요. 2015년 기준, 의류·원단·액세서리 매장의 3분의 1~절반이 한국계로 추산되며 연 매출만 100억 달러, 고용은 2만 명에 달했습니다.
전성기의 빛과 그림자
포에버21 같은 패스트패션 거인이 자바시장에서 물건을 조달했고, 성공한 1세대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코리아타운 빌딩까지 사들이며 “자바가 코리아타운을 먹여 살렸다”는 말이 나왔죠.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해외 생산이 급증하고, 임금·규제가 오르면서 제조 일자리는 20년 새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2014년 연방 정부의 대대적인 돈세탁 단속, 2020년 팬데믹 쇼크는 타격에 방점을 찍었고, 일부 업체는 세제·인건비가 낮은 텍사스 엘패소로 이전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DTLA 2040와 BID
그렇다고 시장이 사라지진 않아요. 2024년 통과된 DTLA 2040 계획은 다운타운 주거용 토지를 두 배로 늘려 20년간 10만 가구를 짓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습니다. 패션 디스트릭트 BID는 이에 맞춰 ‘주거·오피스·쇼룸·소매가 어우러진 복합 개발’과 보행 친화 거리 조성, 치안·청소 인력 확대를 2024‑25년 목표로 발표했죠. 작은 원단상·봉제 공장도 온라인 주문‑소량 생산 (마이크로 팩토리)으로 모델을 전환하며, 빠른 납기·저탄소 공급망을 무기로 다시 경쟁력을 찾고 있습니다.
e‑커머스 & 지속가능 패션의 실험실
팬데믹 이후 바이어 발길이 줄자 상인들은 틱톡·인스타 라이브 세일, B2B 도매 플랫폼으로 판로를 넓혔고, ‘당일 샘플→3 일 내 대량’ 같은 초단기 리오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동시에 업사이클 원단, 재고 의류 리세일 쇼룸이 늘어 ‘지속가능 패션의 현장 실험실’이라는 평가도 받죠. BID 트렌드 리포트는 “2023년 이후 빈 점포 중 35%가 리세일·친환경 컨셉으로 재오픈했다”고 집계합니다.
결국 자바시장은 “거대한 봉제 공장 단지”에서 “초단기 디자인·제조 플랫폼”으로 진화 중입니다.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트렌드를 가장 빨리 옷으로 만드는 곳”이라는 DNA만큼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 그것이 자바시장의 진짜 경쟁력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