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하루는 고양이처럼 흘러간다.
말 없이, 무심하게.
햇살에 등을 대고
눈꺼풀은 반쯤 감고.

거실 창가에 앉은 열네 살 고양이를 보면
어쩐지 내 모습 같다.
예전엔 내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와
애교를 부리던 아이였는데
이젠 그저 햇살 속에서
가만히 꿈을 꾸는 듯 누워 있다.
간혹 앞발을 살짝 휘젓는 걸 보며
'그럴 수도 있지' 중얼거린다.

그 고요함이 요즘엔 위로다.

내 몸도 낯설다.
쉰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낯설었던 적은 없었다.
조금씩 다가오던 폐경,
이젠 분명해진 신호들.

열이 훅 치밀고,
몸은 무겁고,
짜증이 말도 없이 올라온다.

생리는 1년전부터 멈췄고,
의사가 확실하다는 듯이 말했다.
“폐경입니다”

늦은 폐경이라지만,
그저 내 몸이 잘 견뎌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임신 생각은 없지만,
뉴스에선 쉰 넘은 여자의 출산 이야기도 나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몸이라는 건 참 신비롭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가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그렇게 나도
내 속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때는
작은 일에도 웃었고
요리도, 운동도 즐거웠는데
요즘은 엔진이 하나씩 꺼진 것처럼
귀찮고 무기력하고,
조금은 슬프다.

별일도 아닌데
갑자기 화가 나고
금세 눈물이 맺히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더는 달마다 준비물 챙길 일 없고
계획이 무너질 일도 없다.
자유로워졌다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조금은 허전하다.
어느 문이 닫히는 기분.
한 시절이 지나가는 소리.

젊은 날은
뒤에 두고
이젠
조금 다른 시간을 맞는다.

그렇다고 나쁘진 않다.
내가 뭘 원하는지,
이제는 더 잘 안다.
사람 사이도
감정도
덜 얽힌다.

이 시절도,
고양이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조금 느리게, 조금 무겁게.

그래도 괜찮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변화는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늦게 오는 것도,
느리게 걷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걸.

그리고 오늘도
햇살 위에서
나와 고양이는
같이 숨 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