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년전 쯤 엘에이 다운타운 차이나타운에 처음 갔을 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붉은 등이 걸려있고 기와 지붕처럼 생긴 건물들 사이로 중국어 간판이 걸려있는 모습.

하지만 요즘 다시가서 둘러보니 한 20년전과 느낌이 달라졌다. 한때 북적였을 골목이 쓸쓸하게 비어 있고 문을 닫은 가게가 더 눈에 띄는 날이 많다.

관광객들은 아직 사진을 찍고, 맛집으로 보이는 중국요리집 앞에서 줄도 서지만, 그 화려함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이다. 딤섬집 앞에서 고기 찐빵을 하나 들고 씹다 보면 예전만큼의 활기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든다. 언제부터 이렇게 낡고 느슨해졌을까. 중국계 1세대들이 떠나고 자녀들은 더 좋은 지역으로 올라타며 생긴 변화일까.

문득 마음속에 스치는 생각. 이게 차이나타운의 미래라면 한인타운도 언젠가는 이렇게 변하는 건 아닐까.

지금은 코리아타운이 LA에서 가장 뜨겁고 붐비는 동네 중 하나다. 삼겹살집은 줄 서서 먹고, 카페는 새벽까지 음악이 흐른다. 젊은 이민자, 유학생, IT 직장인, 투자자까지 모여드는 에너지. 하지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도시의 유행은 늘 바람처럼 바뀐다.

이곳도 언젠가 임대료가 치솟고, 새로운 개발이 들어오고, 가게 한 두 곳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 차이나타운처럼 이름만 남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맛과 소리는 천천히 희미해질까. 관광지로만 소비되는 또 하나의 테마 거리로 바뀌면 어떡하지.

차이나타운 골목을 걷다 보면, 그래도 괜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문 닫은 가게 사이사이로 남아 있는 작은 맛의 흔적들, 대만식 버블티 한 잔에 쫀득한 펄이 씹히고, 기름 향 진하게 올라오는 돼지고기 국수집에서 허기진 배를 금방 달랠 수 있다. 그 한 끼가 주는 만족감은 여전히 확실하다.

다만 그런 매력은 이제 여행자에게만 반짝거리는 것 같다. 처음 온 이가 보면 이국적이고 신기하겠지만, 오래된 벽돌 틈새로 스며드는 정적과 쓸쓸함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예전엔 북적였을 것 같은 풍경이 이제는 골목 끝에서 메아리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모습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이 든 자신을 떠올린다. 40이 되고 보니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할 때가 많다. 체력도, 열정도, 빛나던 선택들도 이제는 한 번 더 고민하고 돌아보게 된다. 차이나타운의 퇴색한 간판을 보며 마치 내 젊은 날의 색도 조금씩 바래는 느낌. 동네도 사람처럼 흘러가고, 세월에 깎이고, 버텨내며 새로운 모습을 입는다. 이름만 남아도 그곳에 스쳐갔던 시간과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이라는 끈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차이나타운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머문다는 법은 없다. 빈 가게는 새로운 세대가 메울 수도 있고, 또 다른 문화가 들어와 다시 활기를 띨 수도 있다.

한인타운 역시 언젠가는 쇠퇴를 맞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줄 서서 삼겹살 먹고 K-카페에서 밤새 수다 떠는 시대가 지나고, 개발에 밀려 기억 속 공간으로만 남을지도. 하지만 또 다른 젊은 이민자, 창업자, 예술가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시 이 공간을 채워 넣을 것이다. 세월은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항상 다른 씨앗을 함께 남겨두니까.

내가 걷던 차이나타운은 화려했던 시간을 한 번 지나온 동네의 얼굴이었다. 노을빛이 회색 벽에 퍼지고, 낡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아직 남아 있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느낌. 한때 누군가의 꿈으로 가득했고, 가족의 생계를 지탱했던 가게들 이민 1세대의 땀 냄새와 웃음이 이곳 벽돌에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