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살다 보면 가끔 묘한 감정이 생기고는 하는데 이걸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것 같다.

쿡 카운티에 있는 우리 집은 아파트이긴 하지만 남편이랑 아들이랑 살기에 딱 알맞고, 주방에서 밥을할때 밥솥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그리 넓지않은 공간도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만 열고 밖으로 나가면 그 따뜻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도시 특유의 냉기가 내가슴속으로 떨어진다.

단순히 겨울 바람 이야기라면 좋겠는데, 여긴 날씨뿐 아니라 사람도 온도가 낮은 느낌이라 가끔 마음이 덜컥해진다.

눈이 펑펑 내리고 미시간 호수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건 매년 겪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분위기, 계산대 직원이 인사 없이 물건만 밀어내는 표정 길을 걷다가 어깨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는 순간들은 유난히 서늘하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살 때처럼 "오늘 날씨 춥죠?" 같은 가벼운 한마디조차 여기선 하기 어려운 말처럼 묵직하다.

도시에 살아가는 방식이 각자 버티는 방식이라고 해도 때로는 그 무심함 속에 내가 너무 작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아이의 학교 앞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마주칠 때면 어색한 미소만 지은 채 말 없이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들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최대한 감정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 같아 보여서, 내가 먼저 다가가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다 아이가 어느 날,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오늘은 친구들이랑 별로 안 놀았어"라고 말하면, 그 순간 도시의 차가운 공기가 우리 집 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아 마음이 콱 쥐어온다. 아이는 금세 다른 얘기로 넘어가지만 나는 혹시 이 도시의 냉기가 아이 마음에도 닿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해도, 밖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이 어느 틈엔가 마음 사이로 스며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또 이 도시를 미워할 수만도 없다. 그런 외로움 뒤에 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 시카고강 주변을 천천히 걸어다니면 바람과 물결 사이에서 쓸쓸함 대신 차분한 자유가 느껴진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 무심함 속에서 오히려 나만의 공간을 갖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도시는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손을 내밀지 않지만, 대신 내가 스스로 손을 뻗고 자리를 만들면 절대로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버티는 법을 알려준다. 누군가가 챙겨주지 않아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나를 지키는 살아 있는 감각 같은 게 생긴다. 차갑지만 견고한 바람이 나를 조금씩 강하게 만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시카고는 가끔 모진 도시처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집착하게 되는 곳이다. 정 붙이기 어렵지만, 정 붙여버리면 쉬이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도시. 벽 같은 바람이 나를 막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내 등을 밀어준 듯한 기분을 주는 도시. 이곳에서는 누구도 내 감정을 어루만져주지 않지만 덕분에 내가 내 마음을 직접 돌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