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퀸즈에서 은퇴하고 나니 한국살던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자주 생각 나는게 어르신들이 드시던 보약이다. 예전 한국에서는 나이 들면 당연하다는 듯이 탕약을 지어 먹었다. 동네 한약방에서 맥 짚고, 봉투에 싸인 한약 팩을 한 달 치 받아다가 아침저녁으로 데워 먹는 게 일상이었다.

약을 달일 때 나는 냄새는 한 번 맡으면 잊히지 않는다. 달그락거리는 약탕기 소리와 함께 집 안에 퍼지던 쌉싸름한 향은 좋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창문을 열어도 빠져나가지 않고 옷장과 이불, 커튼까지 스며들어 하루 종일 따라다녔으니까.

그 냄새가 나면 어른들은 몸에 좋은 냄새라고 했지만 아이들에겐 병원 냄새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쌍화탕같은 냄새라고 느껴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냄새는 약효보다 기억으로 남은것같다. 건강을 챙기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만들어 올리던.... 그래서 지금은 다시는 쉽게 맡기 힘든 시절의 공기 같은 것 말이다.

그당시 어르신들끼리는 어느 집이 약이 잘 듣느냐, 누가 어떤 약을 먹고 기운을 차렸느냐가 단골 화제였다. 홍삼은 거의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았고 명절 선물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살다 보니 그런 풍경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내가 살고있는 미국에서는 탕약을 달일 일도 없고, 탕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자체가 없다.

대신 병원에서는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약보다는 식습관, 운동, 수면이 먼저라고.

처음엔 그 말이 너무 건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단순한 걸로 건강이 유지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70이 넘어서 돌아보니 결국 맞는 말이었다. 요즘 내 건강 관리는 아주 소박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 공원을 천천히 한 바퀴 걷고, 날씨 좋으면 퀸즈 보태니컬 가든 쪽으로 발길을 늘린다.

무리해서 뛰지는 않고 숨이 약간 찰 정도까지만 걷는다. 음식도 특별한 보약은 없다. 기름진 건 줄이고, 채소랑 생선 위주로 먹고, 짜지 않게 먹으려고 신경 쓴다. 한국처럼 무슨 보약을 먹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나 역시 그런 걸 찾지 않게 됐다.

홍삼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미국 한인 마트에서도 홍삼 진열대가 꽤 컸는데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 대신 비타민 D, 오메가3 같은 영양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건 보약이라기보다는 부족한 걸 채운다는 개념에 가깝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생각이다. 예전에는 기운이 떨어지면 뭔가를 먹어서 채워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덜 쓰고, 잘 쉬고, 꾸준히 움직이는 게 진짜 보약이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 생활이 보약 문화를 바꿔놓은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알려준 답이 바뀐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탕약 대신 햇볕과 산책 과한 욕심을 내려놓는 마음을 보약처럼 챙기며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