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니면 꼭 한 번은 받는 질문이 "넌 커서 뭐 될 거니?"

그때 "대통령이요" 라고 하면 주변 어른들이 꼭 웃으면서 "허허, 이놈 크게 되겠네."

그 말 한마디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뭔지는 몰라도 뭔가 인생의 끝판왕 같은 느낌은 있었다.

대통령은 공부도 잘해야 하고, 사람도 잘 이끌어야 하고, 무엇보다 존경받는 자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건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넘버 1이라는 확실하게 '폼나는 인생'의 상징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또 다른 버전의 인생 철학을 들었다. 과 선배 한 명이 술만 마시면 반복하던 말이 있다.

"야, 남자는 살다 보면 한 번은 폼나게 살 날이 온다. 그때까지 버티는 거야."

그 말이 그때는 참 위로가 됐다.

지금은 좀 고생해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뭔가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 온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승진이든, 사업 성공이든,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연애를 하던 아니면 그냥 인생의 어떤 장면이든 말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폼나는 자리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보면 느낌이 좀 묘하다.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자리로 올라간 사람이다.

검사에서 대통령까지. 이력만 보면 드라마 주인공이다. 인생 역전의 교과서 같은 스토리다.

초등학생 시절 누군가 "대통령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면, 주변 어른들이 정말로 "크게 될 놈이다"라고 했을 법한 길이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 화려함이 너무 빨리 사라진 느낌이다.

마치 조선시대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다.

어제까지는 대신들 앞에서 왕이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반정으로 폐위되어서 유배지로 내려가는 장면 같은 거 말이다.

권력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올라갈 때는 인생의 정상인데, 내려올 때는 역사 속 인물처럼 평가가 갈린다.

여기서 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릴 때 꿈꾸던 '폼나는 자리'라는 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대통령도, 대기업 임원도, 유명인도, 다 그 순간만 반짝일 뿐이다.

그 자리 자체가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면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는 위치일 수도 있다.

과 선배 말이 문득 다르게 들린다. "폼나게 살 날이 온다"가 아니라, "폼나 보이는 순간이 잠깐 온다"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사람은 다시 평가받고, 비교되고, 때로는 비판받는다.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올 때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구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성공의 기준이 조금 달라 보인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게 더 어려운 시대 같다.

박수받는 순간보다, 욕먹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이 더 귀한 시대다.

어릴 때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면 어른들이 웃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웃음은 "그 자리도 별거 아니다"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인생은 왕이 되는 게임이 아니라, 유배 가지 않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요즘 뉴스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폼나는 자리보다, 무너지지 않는 자리가 더 어려운 시대다.

그리고 아마, 그게 진짜 크게 사는 인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