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듣게 되는 말이 하나 있다. "if it ain't broke, don't fix it"

고장 안 났으면 고치지 말라는 뜻인데, 이게 그냥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말 같으면서도 묘하게 삶의 요령을 알려주는 명언이다.

한국말로 하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라, 아니면 사서 고생하지 마라 같은 말인것 같다.

이게 중서부 특유의 현실주의가 잘 표현된 문장이라고 할까. 유난떨지 않고 당장 현실적으로 잘 돌아가는 걸 먼저 중시하는 태도다.

나도 예전에 이 말을 무시했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다.

20년되어가는 픽업트럭 엔진룸을 열고 점화 플러그 배선을 보고 있던 날이었다. 시동은 잘 걸렸고, 주행도 문제없었다. 다만 배선이 오래돼 보여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직 고장은 아닌데, 언젠가는 문제 생길 것 같다는 그 애매한 느낌.

미리 갈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건드린 부분이 배선판 같은 외장 플라스틱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배선을 잡아 빼는 순간 배선 끝에 붙어 있던 점화 코일 커넥터가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똑 소리도 없이 갈라졌다. 오래된 플라스틱 특유의 바스러지는 느낌.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배선을 갈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사람이 배선판까지 같이 고쳐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그날 이후로 그 문장이 다르게 들린다. if it ain't broke, don't fix it은 보수적인 말이 아니다.

오히려 리스크 관리에 관한 말이다. 괜히 건드리면 문제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오래된 물건일수록 그렇다. 자동차든, 집이든, 사람 관계든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시간만큼이나 약해져 있다.

오하이오 사람들은 이런 걸 몸으로 배운다. 눈에 띄게 고장 나기 전까지는 굳이 분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해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연쇄적으로 튀어나온다는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농기계, 트럭, 오래된 보일러까지. 잘 돌아가면 그냥 둔다. 고치고 싶다는 욕구보다 지금의 안정성을 더 높게 친다.

이 철학이 재미있는 건 삶 전반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잘 굴러가는 직장, 큰 문제 없는 인간관계, 특별히 아프지 않은 몸 상태.

이 모든 걸 괜히 더 좋게 만들겠다고 건드리다 보면, 오히려 더 피곤해질 수 있다.

물론 진짜로 고장 나기 전에 손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판단 기준이 중요하다.

불안해서 건드리는 것인지, 실제 신호가 와서 움직이는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 자동차 배선판 사건이 딱 그랬다. 문제의 신호는 없었다. 소음도 없었고, 출력 저하도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먼저 불안해진 거다. 그 불안이 플라스틱을 부쉈고 멀쩡하던 오후를 골치 아픈 저녁으로 바꿔놓았다.

안 건드렸으면 몇 달은 더 탔을지도 모른다. 그 몇 달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if it ain't broke, don't fix it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쓸데없는 개입을 경계하라는 말에 가깝다.

고칠 때는 진짜 고장 났을 때, 아니면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 하라는 거다.

미국식 실용주의의 진짜 매력은 이 담백함에 있다. 과하지 않고, 겁내지 않되, 함부로 나서지도 않는다.

요즘은 뭔가 손대고 싶어질 때마다 그날 엔진룸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게 정말 고장 날것같은 일인가, 아니면 내가 심심한 건가 한참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