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 밥 줘" 하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느 날부터 "Mom, I'm good"으로 대답합니다. 한인 가정이라면 한 번쯤 겪어 본 장면일 겁니다.
다음 주 금요일인 10월 9일이 한글날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저는 우리 집 식탁에서 한국어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다시 따져 보게 됩니다.
먼저 한글날이 어떤 날인지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해가 1446년이고, 한글날은 그 반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도 한글날은 1991년에 공휴일에서 빠졌습니다. 그러다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됐습니다.
본국에서조차 한동안 쉬는 날이 아니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언어를 지키는 일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이제 숫자를 보겠습니다. Pew Research Center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아계의 68%가 집에서 영어만 씁니다.
한인만 따로 보면, 이민자와 미국 태생을 모두 합쳐도 39%가 집에서 영어만 사용한다고 나옵니다. 1세대가 섞인 수치인데도 이 정도입니다.
솔직히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빠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 왜 하필 사춘기에 끊길까요.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짚는 첫 번째 이유는 정체성입니다.
한인 2세 청소년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두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양쪽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한국어는 "나를 튀게 만드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Pew의 다른 조사에서도 아시아계 중 미국 태생 이민 2세가 자기 뿌리의 일부를 숨겨 본 경험이 가장 많은 그룹으로 나왔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한국어를 피하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입니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스포츠, 음악, AP 수업이 한꺼번에 몰립니다.
연구 보고서들도 바쁜 일정과 다른 활동과의 경쟁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한국어 수업 등록이 줄어든다고 지적합니다. 토요일 오전 한글학교가 제일 먼저 밀려나는 구조입니다.
세 번째는 부모 쪽 문제입니다. 부모가 한국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실제로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실력이 크게 갈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제일 아프게 읽혔습니다. 아이가 영어로 대답하면 편하니까 부모도 슬그머니 영어로 넘어가거든요.
그렇다면 현실적인 해법은 뭘까요. 저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아이에게 실익을 보여 주는 쪽이 낫다고 봅니다.
Ohio에는 Seal of Biliteracy 제도가 있습니다. 영어와 다른 언어 모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증명하면 고등학교 졸업장에 인증 seal을 붙여 주는 제도입니다.
대상은 2014년 7월 1일 이후 9학년에 들어간 학생, 즉 2018년 졸업생부터입니다. 외국어 쪽은 승인된 평가에서 Intermediate High 이상 같은 기준을 채워야 합니다.
다만 모든 학교가 자동으로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학교가 참여를 선택해야 하니 담당 카운슬러에게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예전에 있던 SAT Subject Test 한국어 시험은 2021년에 College Board가 Subject Test 자체를 없애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주 단위 인증이 더 쓸모 있습니다.
지역 자원도 생각보다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주말 한글학교가 여러 곳 운영되고, 그중에는 1995년부터 이어 온 곳도 있습니다.
등록 시기와 반 편성은 학교마다 다르니 직접 연락해 보는 게 정확합니다. 사춘기 아이라면 또래가 있는 반인지부터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 가정 아이들 가운데 영어만 쓰는 아이들이 모국어를 유지한 또래보다 중퇴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어가 공부에 방해된다는 걱정은 근거가 약하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권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저녁 식탁 한 끼만은 한국어로, 대신 아이가 영어로 답해도 혼내지 않는 겁니다.
숙제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영상통화를 한국어 시간으로 정해 두는 집도 있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분명하면 아이도 한국어를 써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습니다.
K-drama나 K-pop을 핑계 삼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가 먼저 관심을 보이는 콘텐츠로 들어가면 거부감이 훨씬 덜합니다.
사춘기에 한 번 끊겼다가 대학에 가서 스스로 한국어 수업을 찾는 2세도 있습니다. 그때 돌아올 다리를 끊지 않는 게 부모가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한글날에는 거창한 계획 말고, 오늘 저녁 한 문장부터 한국어로 건네 보시지요. 저는 그게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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