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나는 서른일곱이었다.
그해 4월말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LA 폭동은 내 인생의 가장 깊은 상처로 남았다.
올림픽에 있던 나의 음식점은 한인 유동 인구가 많고 흔하던 한인 유학생들 덕분에 매출이 잘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동이 터졌을 때는 가게 지붕에 올라가 자경단 활동을 하며 총을 들고 밤을 새워야 했다.
우리가 지킨 건 단지 물건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가족의 생계, 우리 부모 세대의 피와 땀, 그리고 이민 1세대의 자존심이 있었다.
그날, 경찰은 오지 않았다.
신고를 해도, "지금은 대응이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 틈을 타 약탈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단순한 분노의 분출이 아니었다.
쇼핑카트를 끌고 들어와 전자제품을 훔치고, 금은방을 부수고, 약국의 진열장을 쓸어갔다.
어떤 자들은 심지어 트럭을 몰고 와 가게 유리창을 깨고 돈통과 각종 전자제품을 다 털어서 싣고 갔다.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아니,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
폭동은 단 한 번이 아니었다.
1992년 이후에도,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또 한 번 LA는 불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때도 같은 분노를 느꼈다.
시민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또다시 약탈이 정당화되고 있었다.
모든 약탈자들이 사회 정의를 외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기회주의자였고, 혼란을 틈탄 절도범일 뿐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약탈도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반영이다."
"그들의 분노는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짜 분노한 사람은 커뮤니티를 지키려 한다.
진짜 억울한 사람은 이웃의 집을 부수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억울해도, 남의 가게를 부수고 그 안의 물건을 훔칠 권리는 없다.
나는 웨스턴 가에서 함께 자경단을 꾸렸던 동료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김씨 아저씨는 총격을 받고 팔에 상처를 입었고, 정씨는 가게를 통째로 불태우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끝까지 법을 지켰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며 세금을 내고, 두 아들을 키워냈고, 손주도 보고 있다.하지만 마음 한 켠엔 아직도 깊은 회한이 남아 있다.
뉴스에서는 폭동 주동자들이 "사회운동가"로 포장되고, 약탈자들이 "억눌린 목소리"로 미화된다.
그러나 피해자는 누구였는가.
코리아타운 상인들, 거리의 작은 식당들, 이민자들의 장사터였던 곳이 그날 불탔다.
무슨 정의가, 무슨 자유가 우리 같은 소상인의 피땀을 앗아갔는가.
지금도 나는 매년 4월이 되면 폭동이 터졌던 그날의 냄새가 아직도 코끝을 맴돈다.
타이어 타는 냄새, 줄담배로 초조했던 그 밤공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들을 미워한다.
약탈자들을, 상습적으로 폭동에 가담하고 그걸 재미 삼아 촬영하며 SNS에 올리는 자들을.
그들이 가게 유리창을 깰 때, 그들이 가져간 건 냉장고나 금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신뢰였다.
법과 질서에 대한 믿음, 사회 정의에 대한 희망,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감—모두 그날 함께 박살 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지붕 위에 올라 총을 들 힘은 없지만, 아직도 그때의 분노는 내 안에 살아 있다.
폭동은 지나간 뉴스가 아니다.그건 아직도 살아 있는 경고의 기억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