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카운티에서 두 아들을 키우는 44세 아버지로서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이름은 단연 “오타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도, 뉴스 미리보기 글에도, 심지어 아들 학교 친구들 이야기 속에도 오타니 쇼헤이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처럼 등장한다.
‘야구는 지루하다’며 미식축구나 농구를 선호하던 요즘 세대 아이들이 유튜브 클립으로 홈런과 삼진 퍼포먼스를 반복 재생하며 그의 플레이에 감탄하는 걸 보면, 어릴 적 내가 ‘박찬호’를 외치며 살던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 시절과 지금은 무언가 다르다.
대학교 시절, 내 사촌동생은 리틀야구 조기교육을 받으며 고등학교까지 야구에 올인했다. 새벽 훈련, 스카우트 캠프, 여행경기, 그리고 부모님들의 뒷바라지. 모든 것이 ‘프로 진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현실은 매정했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엘리트 유망주들과의 경쟁, 스폰서의 유무, 코치와의 관계, 부상 리스크,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야구 시스템 내에서의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의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그는 대학에 진학하며 야구는 접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다시 배트를 잡지 않았다.
그 때 느꼈던 건 하나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미국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은 현실과 너무 멀구나....
이런 기억이 있어서일까. 요즘 오타니 쇼헤이의 등장과 그를 둘러싼 아시안 야구 붐을 보며 반가움보다는 약간의 씁쓸함이 먼저 든다.
마치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와 동시에 "그래도 결국은 몇 명의 슈퍼스타일 뿐"이라는 냉소가 동시에 스친다.
1990년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을 때,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야구 열풍이었다. 한인 친구들끼리 ESPN에서 박찬호 선발경기를 중계한다는 소식만 들으면 다 같이 TV 앞에 모였다. 김병현, 서재응, 추신수로 이어지는 계보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집단적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타니는 놀랍도록 뛰어난 선수고, 이미 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들을 쓰고 있지만, 그를 보며 ‘나도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적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스템은 어느 순간부터 더 거대해졌고, 아이가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시간, 자금, 인맥은 부모 세대에게 큰 부담이다. 특히 아시아계 가정은 여전히 학업 중심의 문화 속에 있으며, 야구 같은 스포츠를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데 신중한 편이다.
또한 스포츠 자체의 위상도 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야구는 미국 4대 스포츠 중에서도 단연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NFL과 NBA가 미디어 지형을 장악하고 있으며, Z세대는 유튜브 하이라이트 중심의 짧고 강렬한 콘텐츠를 선호한다. 한 경기 3시간 이상 걸리는 야구는 그들의 주목을 끌기에 버겁다.
나는 지금도 토요일 아침이면 두 아들과 함께 공원에서 가볍게 캐치볼을 한다. 가끔은 아들이 묻는다.
“아빠, 나 야구선수 될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곧 이렇게 말해준다.
“너가 정말 좋아한다면, 끝까지 해보는 거야. 다만 야구를 통해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단다.”
야구는 여전히 멋진 스포츠다. 오타니 덕분에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이, 단발성 유행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다리 역할이 되길 바란다.
어쩌면, 진짜 야구 열풍은 아직 오지 않은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