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엘에이 다운타운 그리고 윌셔길 부근의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 개발 붐이 일고 있습니다.
높이 짓고, 외관은 모던하고 세련되게, 실내는 호텔급 마감재를 사용한 고급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죠.
얼핏 보면 우리가 사는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며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트렌드가 가진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납니다.
첫 번째 문제는 고급화와 소형화의 공존입니다.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대부분 500~700 스퀘어피트 이하의 소형 유닛으로 구성됩니다.
예전 같으면 원베드룸이라 부르지 않았을 작은 유닛들이, 이제는 '럭셔리 마이크로 유닛'이라는 이름을 달고 월 렌트 3,000달러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흔합니다.
문제는 이런 유닛들이 실질적인 주거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마감이 고급스럽고 스카이뷰가 있다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느끼는 공간의 부족은 쉽게 무시될 수 없는 스트레스입니다.
그리고 소형화된 아파트는 충분하지 못한 방음재 설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엘에이 지역에서 오래된 아파트일 수록 층간소음이 적다는 것은 이미 상식입니다.
새로 진 아파트는 테넌트간의 층간소음 문제가 큰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높은 건축비용이 고스란히 렌트비로 전가된다는 점입니다.
엘에이의 인건비와 자재비는 팬데믹 이후 급등했고, 이제는 단순한 3-5층짜리 아파트조차도 스퀘어피트당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시 인허가, 친환경 인증, 주차장 설계 요건 등 복잡한 규제까지... 개발업자들은 ‘렌트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빠집니다.
결국 그 부담은 세입자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것이죠.
세 번째는 도시의 주거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수록, 중산층 혹은 서민층이 감당할 수 있는 임대 주택은 점점 줄어듭니다.
과거에는 한인타운이나 코리아타운 인근에서 1,500달러 이하로 괜찮은 원베드룸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리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헐값의 리스를 없애고 고가의 임대로 전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갈수록 주거의 질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공동체의 붕괴입니다. 고급 아파트들은 보통 단기 계약자, 젊은 전문직, 외국인 유학생 등을 주요 타깃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오래 살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맺을 필요도 느끼지 않죠.
반면, 기존 커뮤니티에 오래 살던 주민들은 임대료를 감당 못하고 밀려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골목마다 이웃이 인사하던 한인타운이, 지금은 타워형 아파트들 사이에서 각자 고립된 주거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캘리포니아를 등지고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그리고 텍사스,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로 많이들 떠나갔고 지금도 떠나고자 하는 한인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부동산 업자로서 고급 개발이 필요한 이유도 이해합니다.
땅값과 인건비, 투자자의 기대수익을 생각하면 저렴한 임대주택을 짓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죠. 하지만, 도시 전체가 고급 아파트로만 채워진다면, 결국 그 도시는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들어올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도시’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민간과 정부가 함께 고민하며, 엘에이의 주거 문제를 ‘높이’가 아닌 ‘넓이’에서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