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화재 범인으로 몰린 소, 126년 만에 누명 벗다 - Chicago - 1

시카고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가 있습니다. 1871년 대화재는 오리어리 부인네 소가 랜턴을 걷어차서 시작됐다는 거요.

저도 처음 미국 와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땐 그냥 웃긴 동네 전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전설에 진짜 사람이 엮여 있었고, 그 사람이 평생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걸 알고 나니 얘기가 좀 달라지더라고요.

불이 난 건 1871년 10월 8일 밤입니다. 시작점은 드코븐 스트리트에 있던 패트릭과 캐서린 오리어리 부부 집 뒤편 헛간이었어요.

그 해 시카고는 유난히 건조했고, 건물 상당수가 나무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바람까지 세게 불면서 불은 강을 건너 도심까지 번졌죠.

브리태니커 기준으로 불탄 건물은 1만 7천 채가 넘습니다. 도시의 3분의 1이 폐허가 됐고,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하룻밤 새 집을 잃었어요.

사망자 수는 지금도 정확히 모릅니다. 시신을 다 찾지 못했고,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소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화재 직후 신문들이 "헛간에서 젖을 짜던 오리어리 부인 옆에서 소가 램프를 걷어찼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고, 경쟁 신문들이 이걸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문제는 이게 사실이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날 밤 부부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시 당국도 조사위원회를 꾸렸어요. 손으로 받아 적은 증언만 1,100쪽에 달했는데, 결론은 헛간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것 말고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퍼진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죠. 소와 랜턴, 그리고 아일랜드 이민자 아줌마라는 조합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그림이었거든요.

여기서 좀 씁쓸한 대목이 나옵니다. 당시 시카고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자들은 가난하고 술 좋아하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거대한 재난이 터지자 사회는 탓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이 캐서린 오리어리였던 겁니다. 같은 이민자 입장에서 보면 이 부분이 영 남 얘기 같지가 않아요.

훗날 당시 기자였던 마이클 어헌은 소 이야기를 자기들이 지어냈다고 털어놨습니다. 기사를 더 재밌게 만들려고 그랬다는 거예요.

다만 이 고백도 깔끔하진 않습니다. 고백 시점이 자료마다 다르고, 다른 기자들도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했거든요.

그래도 핵심은 분명해요. 소가 랜턴을 찼다는 이야기는 목격자도 증거도 없이 신문 지면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캐서린 오리어리는 189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자들이 찾아오는 걸 피했고, 사진 찍히는 것도 거부했다고 전해져요.

반전은 한 세기가 지나서 일어납니다. 리처드 베일스라는 사람이 토지 기록과 당시 증언을 하나하나 다시 맞춰보기 시작한 거예요.

재밌는 건 이 분이 전업 역사학자가 아니라 부동산 권원, 그러니까 title 쪽 일을 하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땅 경계와 건물 배치를 읽는 게 본업이었으니, 옛 지도와 등기 기록을 겹쳐 보는 데는 누구보다 강했던 거죠.

베일스는 불을 처음 발견했다고 증언한 이웃 대니얼 설리번에게 주목했습니다. 의족을 한 그가 그 짧은 시간에 헛간까지 갈 수 있었는지, 그 자리에서 헛간이 보이기는 했는지 의문을 제기했어요.

물론 설리번이 원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시카고 역사학계에서도 추정이 섞여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실제 원인은 지금도 미궁이에요.

그래도 베일스의 연구는 결정적인 걸 하나 해냈습니다. 오리어리 부인과 소를 범인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걸 공식 기록으로 다시 확인시킨 거죠.

1997년, 시카고 시의회 경찰소방위원회는 에드워드 버크 시의원이 낸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오리어리 부인과 그녀의 소를 모든 책임에서 영원히 면책한다는 내용이었어요.

화재가 난 지 126년 만입니다. 정작 본인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넘은 뒤였고요.

시의회는 대신 다른 범인을 지목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남겨둔 셈인데, 저는 오히려 이게 제일 정직한 결론이라고 봐요.

지금 그 헛간 자리에는 시카고 소방국 훈련 아카데미가 서 있습니다. 불이 시작된 곳에서 소방관을 키운다는 게 꽤 상징적이죠.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하나예요. 큰일이 터지면 사람들은 증거보다 "그럴 것 같은 사람"을 먼저 찾는다는 겁니다.

코로나 때 아시아계를 향한 시선을 떠올려 보면 1871년이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에요. 그래서 뉴스를 볼 때 출처부터 확인하고, 누가 쉽게 낙인찍히는지 한 번 더 보는 습관은 꼭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시카고 사시는 분들, 다음에 루즈벨트 로드 쪽 지나가시면 소방 아카데미 한 번 보고 가세요. 126년 걸린 누명 벗기 이야기가 거기서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