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캘리포니아에 살게 되면서 요리를 하다가 새롭게 발견한 매력이 있다면, 바로 할라페뇨다.

마켓에 가면 항상 보이는 초록빛 고추, 처음엔 그냥 "아, 매운 고추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이 녀석 없이는 뭔가 허전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청양고추가 국물요리의 꽃이라면, 미국에서 내 국물 요리에선 할라페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할라페뇨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된장찌개에 넣어봤을 때였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할라페뇨를 썰어 넣었는데, 된장의 깊은 맛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칠맛이 살아났다.

된장의 구수함이 살짝 무거워질 뻔한 순간, 할라페뇨가 톡 쏘듯 치고 올라와 국물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더라. 그 뒤로 된장찌개는 무조건 할라페뇨를 넣는다.

청국장에도 환상의 맛을 보여주는데 주의할점은 다 끓이고 마지막 1분전에 넣어야 제맛이 난다. 계속 끓이면 매운맛이 사라지는 듯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월남국수, Phở 라고 부르는 베트남 국수에도 할라페뇨는 빠질 수 없다. 현지식 그대로 먹으려면 고수와 라임, 그리고 얇게 썬 할라페뇨가 기본인데, 그걸 경험하고 나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뜨끈한 국물에 은근하게 매운 향이 퍼지면서, 국수를 후루룩 삼킬 때 코끝이 찡해진다. 그 맛은 "아, 이게 바로 미국에서 즐기는 아시아 퓨전의 묘미구나" 싶게 만든다.

조개탕에 넣었을 때도 신세계였다. 원래 바지락만으로도 시원한 국물이지만, 거기에 할라페뇨 한두 개 썰어 넣으면 바닷바람이 아니라 해변의 태양 같은 맛이 난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소주 한 잔을 부르는 마법 같은 조합이다.

콩나물국에도 도전해봤다. 해장용으로 딱 좋은 국물에 할라페뇨를 넣으면, 해장이 아니라 그냥 정신이 번쩍 든다. 매운탕은 말할 것도 없다. 원래도 얼큰하고 시원하지만, 할라페뇨를 넣으면 한국식 고춧가루 매운맛과는 또 다른 직선적이고 청량한 매움이 확 올라온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건, 할라페뇨가 단순히 멕시코 음식 전용 재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작은 고추는 국적 불문, 어느 국물 요리에도 찰떡같이 어울린다. 마치 외국인들이 김치를 처음엔 낯설어하다가 나중엔 고기든 밥이든 빠질 수 없는 반찬으로 느끼는 것처럼, 나도 이제 할라페뇨 없이는 국물이 심심하다고 느낀다.

게다가 미국 슈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한국에서 청양고추를 구하려면 한인 마트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냥 동네 마트에서 신선한 할라페뇨를 봉지째로 집어올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결국 내 식탁에서 할라페뇨는 단순한 고추가 아니라, 이민 생활 속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이다.

된장찌개, 월남국수, 조개탕, 콩나물국, 매운탕... 메뉴는 달라도 할라페뇨 하나로 국물 맛이 새로워지고,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나만의 색깔을 입힌 요리가 탄생한다.

이제 내 요리 철학은 국물이 있는 곳에는 할라페뇨가 있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