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에이의 오후는 2월달에도 선명한 햇살을 뿌립니다.
이렇게 볕이 좋은날 거실에 앉아서 구글 클라우드에 남아있는 15년전 사진을 보는 일은 시간여행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이때만 해도 저렇게 젊었었구나."
이미 50줄 넘긴 나의 입가에 머무는 이 짧은 탄식은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나'라는 존재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같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삽니다.
하지만 사진 속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나를 보는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감정 그리고 낯섦, 약간의 아쉬움이 섞인 묘한 감정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정체성은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에 가깝습니다.
사진 속의 그 사람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고 세상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반면 지금의 나는 그 가능성들을 깎아내어 '의미'라는 이름의 단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상태죠.
사진 속 인물과 나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지만, 실은 완전히 다른 밀도의 삶을 살고 있는 이방인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참으로 얄궂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결핍의 동물'이라, 현재를 살 때는 늘 부족함에 허덕입니다.
젊은 시절의 나: "더 가져야 해, 더 올라가야 해, 왜 이렇게 불안하지?"
중년의 회상: "세상에, 저렇게 빛나고 풍요로웠는데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그 시절 우리는 미래라는 신기루를 쫓느라 발밑에 핀 꽃들을 밟고 지나왔습니다.
50대, 60대가 되어 사진을 보며 느끼는 회한은 바로 그 '인식의 시차'에서 옵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 감정은 시간과 자아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름도 같고, 기억도 이어져 있고, 삶도 연결되어 있죠. 하지만 30대, 40대의 사진 속 얼굴을 보면 깨닫게 됩니다.
저 사람은 나이지만, 지금의 나와는 분명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겁니다.
시간은 흐르는 동안에는 끈적거릴 정도로 느리지만, 지나고 나면 단 한 장의 인화지 위로 무참히 압축되어 버립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2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70대의 당신은 오늘 찍은 셀카를 보며 똑같이 말할 겁니다.
"저 때 참 젊었지, 참 좋을 때였어."라고 말이죠.
결국 우리가 과거의 사진을 보며 느끼는 낯섦과 아쉬움은 현재의 시간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음입니다.
과거는 필터가 씌워진 채 아름답게 박제되고, 미래는 가보지 않아 불안의 안개에 쌓여 있지만 우리가 유일하게 숨 쉬고 만질 수 있는 진실은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젊음은 생물학적 숫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대하는 '생동감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생각합니다.
오늘의 내거 저 역시 훗날 "그때 참 열정적이었지"라며 그리워할 대상이겠지요.
사진 속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하는 대신, 오늘이라는 사진첩의 한 페이지를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가장 현명한 지혜가 아닐까요?


체리맛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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