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와서 겨울을 처음 보낼 때 느낀 건, 광고 속 '푸르른 로키의 도시' 이미지와는 꽤 다른 분위기였어요.

해발 약 1마일(1609m) 위에 자리한 도시라 공기가 맑고 하늘은 투명한데, 정작 땅을 보면 붉은 흙빛 혹은 노란 갈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거든요. 나무들은 잎을 거의 떨궈 스산하고, 가을 끝과 겨울 초입 사이 특유의 쓸쓸한 정적이 도심에 내려앉아 있어요.

저는 "여기가 정말 덴버 맞나?" 라고 생각할 정도 였어요. 초원 끝에 놓인 회색빛 도심, 뒤로는 로키산맥이 장벽처럼 서 있고, 앞쪽 도로는 끝없이 수평선을 향하고 있는데 그 정취가 뉴멕시코·네바다의 사막 풍경과 묘하게 닮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카메라만 들면 덴버는 순식간에 '푸른 도시' 코스프레가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각도를 위로만 조금 올리면, 황량한 땅은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Colorado Blue Sky만 남아요.

덴버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깊어서, 사진만 보면 마치 공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친환경 도시처럼 보이기도 해요. 공기 건조하고 습도가 낮아 햇빛이 더 날카롭게 내려오니, 하늘색 채도가 말도 안 되게 선명해져요.

필터 없이도 광각으로 한 장 찍으면 SNS에서 좋아요 폭발할 만큼 푸름이 살아나요. 현지인들끼리 농담으로 "덴버는 땅은 누렇고 하늘만 너무 멋져서 카메라가 도시를 속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11월 덴버의 도심을 산책하던 날, 길가에 나뒹구는 잎사귀와 바람에 날리는 먼지, 빈 나무 가지들 사이로 파란 하늘만 당당하게 빛나는 모습이 대비되어 묘하게 아름다웠어요. 한 컷은 황량하고 겨울답고, 다른 컷은 청량하고 활기차고... 같은 자리에서 카메라만 돌려도 두 개의 다른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죠.

덴버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은 대개 이 점을 잘 활용해요. 바닥·도시 외곽 쪽을 담으면 서부 사막 같은 뉘앙스가 나고, 나무 위·하늘 쪽으로 프레임을 올리면 진짜 그림엽서처럼 푸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 SNS용 사진은 판타지 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다운타운 근처 유니온 스테이션(Union Station) 앞에서 찍으면 컬러감이 정말 미묘하게 변해요.

건물만 찍으면 클래식 도시 분위기, 뒤로 광각 확장하면 파란 하늘이 개방감을 주고, 발 아래를 담으면 누런 땅이 사막처럼 보여요. 로키산맥 쪽으로 렌즈를 돌리면 초원·구름·산맥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면서 "진짜 콜로라도구나" 싶다가도, 발치 사진만 보면 "어라? 여긴 뉴멕시코랑 닮았는데?" 싶고요.

11월의 덴버는 꽃도 없고 나무도 앙상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도시의 건조한 미(美)가 눈에 더 선명해요.

까슬까슬한 바람, 부드럽게 깎인 언덕,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선 도시가 작아지고 사람은 점처럼 작아지는데, 그 소박함이 저는 좋았어요.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깨달았죠. 덴버는 처음엔 황량하지만, 알고 보면 사진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도시라는 걸.

여름엔 잔디와 나무들이 초록으로 물들어 관광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지만, 늦가을·초겨울엔 그 껍질이 벗겨지고 풍경 본연의 색이 드러나요. 황량함 = 밋밋함이 아니라, 비워져 있기 때문에 하늘·바람·사람이 더 또렷해지는 계절이라는 걸.

결론적으로, 덴버는 흙빛 땅 위에 놓인 도시이지만, 카메라만 위로 들면 세상에서 가장 파란 도시가 됩니다.

그 반전이 이 도시의 매력 같아요. 11월 덴버는 황량함과 청량함이 공존하는 계절. 추워지는 골목 끝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파란색이 황량함을 모두 덮어주곤 하죠.

그래서 저는 웃으며 말하곤 해요.

"덴버는 실제로 보면 사막 같은데, 사진 속에서는 인스타 감성 도시다."